이준호 전 카카오엔터테인먼트 투자전략부문장의 진술이 카카오 운명을 사실상 판가름했다.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에게 '사법 족쇄'를 채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기 때문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이날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창업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창업자와 함께 재판에 넘겨진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와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 법인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들은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경쟁자인 하이브가 공개매수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하이브의 공개매수가(12만원)보다 시세를 높게 설정·고정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혐의다.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결정적 이유는 이 전 부문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전 부문장은 앞서 지창배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를 만났을 당시 자신의 휴대폰으로 배 전 투자총괄대표와 스피커 모드로 전화통화를 연결했다고 진술했다. 이 자리에서 배 전 투자총괄대표가 지 대표에게 SM엔터 주식 매입을 요청했다고 진술한 것.
법원은 이 전 부문장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데다 모순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고 봤다. 수사 압박, 진술 번복 경위 등을 비춰 보더라도 허위 진술을 할 동기가 충분한 만큼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 전 부문장은 이 사건뿐만 아니라 별건으로도 조사를 받았고 수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돼 극심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다"며 "별건 압수수색 이후 이전 진술을 번복하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취지로 진술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을 한 뒤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도)를 신청했고 그 결과 이 사건에서 기소되지 않았다"며 "수사와 재판에서 벗어나고자 (허위 진술을 할) 동기와 이유가 명확하다"고 꼬집었다.
이 전 부문장의 진술은 검찰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사실상 유일한 증거로 제시돼 왔다. 하지만 이 진술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검찰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선고를 마친 후에도 이례적으로 "앞서 말했듯 이 씨의 진술이 없었다면 피고인들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고 일부는 구속도 안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앞서 2023년 2월 배재현 전 카카오 투자총괄대표, 원아시아파트너스 등의 공모에 따라 약 1100억원의 SM엔터 주식을 고가매수·물량소진하는 수법으로 300회 이상 시세를 조종한 것으로 봤다. 이 과정에서 김 창업자가 이를 사전 보고받고 승인하자 시세 조종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당시 SM 경영권 인수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카카오 투자테이블에서 은밀한 경영권 인수가 정해지거나 공개매수 저지 논의, 시세 조종 공모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하이브의 공개매수 기간 마지막 일자에 SM 주가가 하이브의 공개매수 가격(12만원) 이하로 하락할 게 예상되지 않았고 공개매수 실패 가능성이 높게 예상돼 이를 저지할 필요성도 크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SM 주식 매수 당시 주가, 거래량의 동향, 매수주문 전후 상황, 고가 매수 주문의 비율, 각 매수주문 간 시간적 간격, 매수 방식 등 객관적 매매 양태를 살펴봐도 시세조종성 주문으로 보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펀드를 개인적 용도로 사용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지 대표에 대해서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김 창업자는 선고 직후 "그동안 카카오에 드리워진 주가 조작과 시세 조종이라는 그늘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카카오는 "2년8개월간 이어진 수사와 재판으로 카카오 그룹은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급격한 시장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기 힘들었던 점은 뼈아프다"며 "이를 만회하고 주어진 사회적 소명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대영 한경닷컴 기자 kd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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