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금(金) 투자 열풍이 뜨겁다. 국제 금값은 지난 16일 온스당 4300달러를 넘겼다. 올해 들어 사상 최고가 기록을 수시로 갈아치우며 65% 상승률을 기록했다. JP모간과 골드만삭스는 금값이 4800달러까지 더 오를 수 있다고 예측했다.
일본 도쿄 긴자에서는 귀금속 매장이 아침에 문을 열기 전부터 수십 명이 줄을 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우리나라에서도 금괴 품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에는 2억원을 넘는 1㎏ 골드바 정도만 남아 있고 나머지 작은 규격의 제품은 품절 상태다.
사상 최고가 나란히 깬 금·비트코인
월스트리트저널은 금융 시장에서 이른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debasement trade)'가 강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란 통화 가치 하락에 대비한 투자 전략을 뜻한다. 달러를 비롯해 선진국 화폐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면서 투자자들이 대체 자산으로 몰리고 있고, 그 대표 주자가 금이라는 얘기다.사라 비튼 마데라웰스매니지먼트 투자전략책임자는 "월가의 가장 큰 관심사는 디베이스먼트 트레이드"라며 "모두가 그 얘기를 한다"고 했다.
금값의 질주는 미국 중앙은행(Fed) 수장인 제롬 파월 의장이 지난 8월 연설에서 기준금리 인하 재개 신호를 보내자 더욱 속도가 붙었다. 중앙은행이 금리를 내리면 시중에 돈이 풀려 가치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달 들어 금의 '동생' 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은(銀) 가격 역시 45년 만에 신기록을 경신했다. '디지털 금'이라는 별명이 붙은 비트코인도 역대 최고가인 12만6000달러를 찍었다. 안전자산인 금과 위험자산인 주식, 비트코인 등이 동반 강세를 보이는 이례적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통상 투자자들은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일종의 보험 성격으로 미국 국채와 달러를 사들였지만, 지금은 금이 시선을 독차지하는 분위기다. 미국의 정부부채 부담이 커진 가운데 중앙은행 독립성에 대한 신뢰까지 흔들리기 시작한 영향이다. 정치적 불안정이 금융 시장으로 번지는 상황은 프랑스, 영국, 일본 등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주요 선진국의 재정적자가 급증해 정부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다"며 "금이 채권의 대용이 됐다"고 했다.
골드만삭스는 개인이 보유한 미국 국채의 1%만 귀금속으로 갈아타도 금값이 온스당 5000달러선에 근접할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폭등 뒤엔 폭락 불가피" 경고 만만치 않아
하지만 금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금에도 약점이 있는데, 이자나 배당 수익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켈리 JP모간자산운용 수석글로벌전략가는 "금은 물가 상승만큼 흐름을 유지하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뛰어난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뱅크오브아메리카는 역사적으로 수년간 이어진 금값 랠리에는 늘 폭락이 뒤따랐다며 위험성을 경고했다. 현재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금값 강세론'이 뒤집히면 분위기가 급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은 단기 차익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자산의 일부를 담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유튜브 '한경코리아마켓' 채널 모닝루틴 라이브에서 더 많은 경제뉴스와 시사용어를 볼 수 있습니다. www.hankyung.com/mr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