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미한 갈등도 경찰 신고

24일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6월 학폭 사건으로 경찰의 수사 처분을 받은 학생은 1만1023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20.5% 증가했다. 2021년 1만1967명에서 매해 2000~3000명씩 증가해 지난해엔 2만722명으로 늘었다.
수사받은 학생 수 증가는 또래 간 가벼운 수준의 다툼까지 경찰 신고로 이어진 영향으로 분석된다. 전체 신고 사건 중 경찰이 입건 전 조사 종결로 마무리 짓는 학폭 사건은 접수 사건 전체의 50%에 달했다. 학폭을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경찰 단계에서 마무리된다는 것은 매우 경미한 학폭이라는 의미”라며 “사건을 접수하는 경찰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위법 소지가 있다면 검찰이나 법원 소년부로 송치하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같은 반 학생의 슬라임을 가지고 놀다가 망가뜨렸다는 이유로 학폭 신고를 당한 초등학교 4학년 A군의 어머니는 “고의로 훼손한 것이 아니라 힘 조절을 못해 벌어진 일”이라며 “3000원짜리 슬라임 하나 때문에 경찰 조사를 받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녹음 필수’…대화 단절되는 교실
경미한 학폭 사건으로도 경찰 수사까지 받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학교 분위기는 점점 각박해지고 있다. 자녀가 학폭 사건에 휘말리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 최대 관심사 중 하나가 되면서 아이들에게 ‘키링형 녹음기’ ‘볼펜형 녹음기’ 등을 휴대하도록 하는 학부모도 적지 않다.학폭 피해를 당했을 때 신고하거나 가해자로 몰렸을 때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다. 네이버 데이터랩을 보면 ‘보이스레코더’ 검색량은 개학을 앞둔 2월에 평소의 네 배 이상으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부모 간 합의를 통한 갈등 해결이 쉽지 않을 경우 ‘맞폭’으로 대응하는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맞폭이란 신고당한 학생이 징계를 피하기 위해 피해 학생을 신고하는 것을 말한다. 경미한 학폭이라도 검찰 단계로 넘어가 ‘기소유예’를 받을 경우 진학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맞신고로 되레 갈등을 키워 처벌을 피해보겠다는 의도다.
경찰이 상해나 지속적인 괴롭힘, 사이버불링 등 중대 학폭 수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한두 차례 가벼운 신체 접촉이나 우발적인 언쟁 등 경미한 갈등은 학내 화해·조정 프로그램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왔다.
허종선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과거에는 면담이나 화해로 당사자 간 갈등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수사기관에 맡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사소한 갈등까지 법적으로 처리하면 오히려 아이들 간 갈등이 깊어져 교육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류병화/이미경 기자 hwahwa@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