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23일 13:5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 1호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로 주목받았던 독일 트리아논 오피스 펀드가 만기를 연장하지 않고, 현지 도산절차에 따라 자산 처분을 진행하고 있다. 2018년 펀드 설정 당시 “유럽 금융 중심지의 랜드마크 빌딩 투자”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내세웠지만, 핵심 임차인의 이탈과 금리 인상 등이 맞물려 자산 가치가 크게 하락했기 때문이다. 자산 매각에 성공하더라도 후순위 투자자로 참여한 국내 공모펀드 투자자들의 원금 손실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트리아논 빌딩을 담고 있는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의 펀드 만기를 오는 10월 31일 앞두고 만기 연장을 위한 수익자총회를 열지 않을 예정이다. 해당 펀드를 운용하는 현지 특수목적법인(SPC)이 기한이익상실(EOD) 선언으로 작년 10월부터 도산절차를 밟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이지스자산운용 측은 "트리아논 펀드는 자산 처분 완료 전까지 만기 미연장 펀드 상태로 존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도산관재인의 통제하에 매각 절차가 최종적으로 완료될 경우 그 결과에 따라 펀드 청산 등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1990년 준공된 트리아논 빌딩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금융 중심지에 있는 높이 186m, 45층 규모의 오피스 빌딩이다. 앞서 이지스자산운용은 2018년 총 37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설정해 트리아논 빌딩과 현지 주거용 부동산 자산에 투자했다. 기관투자가 대상 사모펀드 1835억원과 개인투자자 대상 공모펀드 1868억원이 모집됐다. 이후 룩셈부르크 현지에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약 5000억원 규모의 담보대출을 조달했고, 투자원금을 더해 총 약 9000억원에 트리아논 빌딩을 매입했다.
당시 공모펀드 판매사들은 “분기 배당이 가능한 안정형 상품”이라고 강조했다. 은퇴자와 개인 투자자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국내 해외부동산 공모펀드의 첫 사례라는 의미도 부여됐다.
하지만 2020년 들어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전체 임대 면적의 약 52%를 사용해온 독일 최대 자산운용사 데카방크가 임차 연장 옵션 포기를 통보하면서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 확산과 본사 이전 계획이 맞물렸기 때문이다. 2024년 6월 실제 퇴거가 이뤄지자 임대율이 곤두박질쳤고, 현금흐름은 순식간에 흔들렸다. 또 다른 주요 임차인인 분데스방크 등이 남아 있었지만, 대형 임차인 이탈의 충격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었다.
2022년부터 글로벌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유럽중앙은행(ECB)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부동산 자산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트리아논 빌딩 감정가는 인수 당시 6억7000만 유로에서 2023년 4억000만 유로로 3분의 1 이상 떨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자산 가치 하락으로 인해 담보인정비율(LTV)은 80%를 웃돌았다. 통상 LTV 상승이 일정 수준을 넘으면 대주단이 대출조건 변경이나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대주단과 협상 끝에 펀드 만기를 2년 연장하고 2023년 11월 30일로 예정된 담보대출 만기를 6개월 일시적으로 유예했다. 이후 대주단은 매각 통제권을 요구했고, 운용사 측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결국 지난해 6월 1일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공식 발생했다. 이후 SPC는 현지 법원 관리하에 도산 절차로 넘어갔다. 매각 권한은 대주단과 관재인에 완전히 이관됐다.
자산 매각을 거쳐 펀드 청산이 진행될 경우 국내 투자자들은 일부 배당금을 제외한 원금 손실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 상황과 임대율 등을 고려할 때 현재 시점에 트리아논 빌딩이 대출금 이상의 가격에 팔릴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이다. 국내 투자자들에게 지금까지 지급된 배당금은 308억원으로, 전체 공모펀드 설정 원금(1868억원)의 16% 수준에 그친다.
이지스자산운용은 "당사는 본건 펀드의 만기가 지난 이후에도 수시공시, 고객안내문 및 운용보고서 등을 통해 수익자분들께 본건 자산의 처분과 펀드의 청산 절차에 관한 주요 사항들을 성실하게 안내해 드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한국투자증권을 비롯해 KB, 하나, 대신, 한화, DB, 키움, 현대차증권이 독일 트리아논 공모펀드를 판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에서는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BNK부산은행, BNK경남은행, 삼성생명 등이 참여했다. 일부 개인 투자자들은 판매사들을 상대로 불완전판매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한국투자증권은 최근 트리아논 빌딩 펀드의 불완전판매를 인정하고, 일부 고객에게 30~40% 배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