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만 빌려주는 '바지 매수인' 수십 명을 동원해 보증금 693억원을 가로챈 전세 사기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금융범죄수사대는 총괄 모집책 A씨 등 전세사기 일당 71명을 사기 혐의로 검거했다고 18일 밝혔다. 적발된 일당은 A씨를 비롯해 컨설팅업자 8명, 매수인 브로커 2명, 매수인 모집책 4명, 그리고 명의를 빌려준 바지 매수인 56명 등이다.
A씨 등은 2020년 5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빌라 306채를 바지 매수인 명의로 매입한 뒤 보증금 693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는다.
이들은 체계적인 수법으로 조직적인 범행을 벌였다. 첫 번째 단계는 '바지 매수인' 모집이었다. 사기 일당은 돈이 없거나 신용이 낮은 사람들에게 접근해 '명의를 빌려주면 돈을 지급하겠다'고 꼬드겨 바지 매수인으로 삼았다.
그 뒤 바지 매수인 명의로 빌라 매수 계약을 맺는 동시에, 해당 빌라에 들어올 전세 세입자를 구했다. 세입자가 낸 전세 보증금으로 빌라 매매 잔금을 치렀고, 사기 일당은 바지 매수인에게 소정의 금액만 주고 나머지 보증금은 모두 자신들이 가로챘다.
A씨와 브로커들은 건당 최대 1500만 원의 리베이트를 챙겨 총 18억 원의 불법 수익을 올린 것으로 조사됐다. 바지 매수인들은 1인당 30~100만원 상당을 지급받았다.
이들은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기존 전세 사기 수법과 다른 방식을 택했다. 통상 임대사업자 한 명이 여러 채의 빌라를 매수하는 것과 달리, 이들은 바지 매수인 한 명당 빌라 1~2채만 매수하도록 해 대규모 조직 범행이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이 때문에 명의를 빌려준 이들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악성 임대인' 명단이나 국토교통부의 수사 의뢰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아왔다. 피해자들이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단순한 보증금 지급 채무 불이행으로 치부돼 수사나 단속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주택시장의 건전한 거래 질서를 교란하는 전세 사기 범행을 엄정하게 단속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