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 대자연이 빚어낸 예술을 접하더라도 배가 든든해야 즐겁다. 식탁은 일용할 양식을 나누는 보금자리이며 즐거움의 원천이다. 식탁에 둘러앉으면 즐거움은 배가된다. 무한한 가능성도 열린다.
어떤 식탁이냐에 따라 예술작품이 탄생하기도 한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창의적인 기운이 깃든 식탁에서 전 세계 애니메이션 역사가 바뀐 사례가 있다.
월트 디즈니 컴퍼니는 자타 공인 세계 최고의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의 중심이다. 나아가 지금은 해가 지지 않는 테마파크 왕국을 건설할 정도로 전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즐거움을 선사한다. 월트 디즈니는 테마파크를 비롯한 수많은 세계 최초를 시도해 성공했다. 오늘날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일군 초석은 1937년 세계 최초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탄생의 배경에 탐오샨터(the Tam O'Shanter) 레스토랑이 있다.

탐오샨터는 할리우드 쇼 비즈니스의 중심 LA에서 1922년 문을 열었다. 이 스코틀랜드 스테이크하우스는 LA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업으로 100년 넘게 서빙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최초의 테마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할리우드 아티스트가 디자인한 스토리북 스타일의 건물은 외관부터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테마에 충실하다. 직원들은 스코틀랜드 전통 타탄체크 코스튬을 입고 서비스한다. 스코틀랜드 동화 속에서 몰입형 다이닝을 경험할 수 있는 이유다.

1940년 이전까지 디즈니 스튜디오에는 사내 식당이 없었다. 결국 월트 디즈니는 일터 가까이에 있는 탐오샨터를 비공식 사내 식당으로 애용했다. 당시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던 디즈니의 창의적인 인재들은 탐오샨터 식탁에 둘러앉아 든든한 한 끼와 함께 작품에 관해 소통했다.
백설공주 제작 기간 동안 우여곡절 속에서도 힘내서 일할 수 있었던 창의력의 요람이 된 셈이다. 백설공주의 일곱 난쟁이 오두막 디자인은 탐오샨터 외관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백설공주는 극장판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그렇게 식탁 위에서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탐오샨터의 시그니처 메뉴는 프라임 립이다. 미국에서 명절 음식으로 사랑받는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음식이다. 특제 로리스(Lawry's) 시즈닝을 더한 소갈빗살 덩이는 24시간 숙성을 거친 후 오븐에 통째로 구워서 다양한 컷으로 썰어 서빙된다. 3시간 동안 천천히 익힌 덕분에 겉은 바삭하고 속은 균등하게 부드럽다. 베어 무는 순간 살아있는 육즙이 입안 가득히 퍼지는 풍미가 인상적이다. 프라임 립은 샌드위치 방식으로도 서빙된다. 점심처럼 가볍게 즐기고자 하는 손님들을 위한 메뉴다.
월트 디즈니는 특히 샌드위치 종류를 자주 먹었다고 한다. 가볍게 먹고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탐오샨터에는 특별한 식탁이 하나 있다. 바로 월트 디즈니가 즐겨 앉았던 'Table 31'이다. 월트 디즈니는 누가 들어오고 나가는지 잘 보이는 레스토랑 안쪽 코너에 자리를 잡고 팀원들과 함께 프로젝트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오늘날 이 식탁 위에는 월트 디즈니가 사랑했던 자리라는 것을 기념하는 작은 명판이 있다. 식탁 표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디즈니랜드 레일로드 프로젝트 당시 그려진 공룡 그림 등 창의적 활동의 흔적도 있다.

Table 31 시그니처 칵테일도 있다. 월트 디즈니가 즐겨 마셨던 것이라 한다. 하이웨스트 더블 라이 위스키 베이스에 엘더 플라워 리큐어, 사과 액상, 레몬주스로 제조해 마티니 잔에 담긴다. 실험정신이 충만한 아메리칸 증류소 브랜드 하이웨스트(High West) 위스키 맛이 먼저 치고 들어오는 다소 투박한 목 넘김이 있지만, 시트러스한 피니시로 밸런스가 잡히면서 여운이 남는 칵테일이다.
창의적 식탁 환경에서 맛있는 음식을 좋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면 무한의 상상세계가 열릴 수 있다. 백설공주의 성공을 발판으로 오늘날의 월트 디즈니 컴퍼니가 존재할 수 있었다. 현재의 본사가 있는 버뱅크로 스튜디오를 확장 이전해 회사가 성장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도 됐다. 본사의 중심 '팀 디즈니 빌딩'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일곱 난쟁이는 백설공주에 대한 헌정이자 회사의 근간을 상징한다.
월트 디즈니를 비롯해 '서부 영화의 대부' 존 웨인과 같은 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즐겨 찾던 탐오샨터. 오늘날에는 톰 행크스가 식탁 위에서 작품 대본 연습을 하기도 했단다. 1940년 사내 식당을 갖춘 이후로도 디즈니 사람들은 탐오샨터를 찾는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디즈니 애니메이터들이 예나 지금이나 식탁에 삼삼오오 모여앉아서 작품 이야기를 펼치는 마법 같은 다이닝 공간인 셈이다.
식탁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공간이 아니다.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말도 있듯이 식탁 위에서는 인문학적인 교양을 쌓을 수도 있고 창의력도 싹 틔울 수 있다. 그래서 식탁 환경은 꽤 중요하다. 탐오샨터는 미국 최초의 테마 레스토랑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창의적인 다이닝 문화를 만들었다.
대성공을 거둔 백설공주 개봉 이듬해인 1938년, 탐오샨터의 창립자들은 프라임 립 메뉴를 내세운 로리스 레스토랑을 비버리힐스에 오픈해 사업을 확장한다. 오늘날 로리스는 글로벌 업 스케일 고메 레스토랑 체인으로 성장했다. 디즈니도 굴지의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이제 식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다듬어 보자. 특별함이 묻어난 식탁 위에서 내 안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류재도 파크앤비욘드 크리에이티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