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지하철 노조가 기초과학연구원(IBS) 의생명 수학 그룹장을 맡고 있는 김재경 KAIST 수리과학과 교수(사진)를 찾아온 건 얼마 전이다. 노조 측은 교대근무로 인한 만성피로, 수면 부족이 직원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수학이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신념을 가진 김 교수에게 딱 맞는 제안이었다. 부산 지하철 노조와 김 교수는 즉각 행동에 나섰다.
김 교수는 10일 “수학적 알고리즘을 적용해 근로자들의 생체리듬과 수면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개선 프로그램을 제시하는 게 최종 목표”라며 “3교대 근무자의 수면 데이터를 분석하면 단순히 ‘언제 피곤하다’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수면의 질을 개선할지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가 이처럼 실생활에 수학을 응용하는 데 관심을 두게 된 건 그의 이력 덕분이다. 서울대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군 제대 후 고등학교 교사로 3년간 근무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학이라는 학문 자체에 흥미를 느껴 수학자의 길을 걷기로 하고, 미국 미시간대로 유학을 떠났다. 입시를 위한 암기 위주의 수학 교육에 한계를 느낀 경험이 그의 목표를 바꿔놨다. 김 교수는 “쓸모 있는 수학을 하고 싶다”며 “수학이 질병 예측과 치료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최종적으로는 치매, 암 같은 중증 질환을 조기 진단할 수 있는 통합 플랫폼을 개발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그는 “수학이 단순히 계산하는 학문이라는 편견을 넘어 사람들의 건강과 삶을 바꾸는 데 기여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와의 협업을 통해 직접 개발한 수면 분석 플랫폼을 지난 7월 출시된 갤럭시워치8에 적용했다. 자체 개발한 ‘슬립웨이크’라는 수면 분석 앱도 있다. 그는 “당장 시장에 내놓을 수준으로 개발이 끝났지만 운영·관리 인력이 부족해 출시를 미루고 있다”며 “향후 스타트업 창업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엔 과학 대중화에 힘을 쏟고 있다. 유튜브 채널 ‘안될과학’과 협업해 일반 시민의 수면 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신청자들의 수면 상태를 분석하고 피드백을 제공해 수면의 질이 개선되는지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그는 “과학자가 유튜브에 나오는 걸 의아하게 보는 시선도 있었지만 시민과학의 좋은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인공지능(AI) 시대에 들어서면서 수학과 인재들의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교수 아니면 갈 곳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는데, AI·데이터산업이 주목받으며 이젠 기업들이 먼저 수학적 사고를 지닌 인재를 찾고 있다는 설명이다. 복잡한 데이터 구조를 해석하고 최적의 알고리즘을 설계하는 능력이 곧 개별 기업의 경쟁력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예전에는 의사와 수학자의 연봉 격차가 압도적이었지만 지금은 스타트업 창업이나 산업계 진출로 오히려 더 높은 보수를 받는 경우도 있다”며 “수학과가 앞으로 황금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했다.
대전=이영애 기자 0a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