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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이단이 정설이 되는 전복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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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엽 칼럼] 이단이 정설이 되는 전복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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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대한 전환의 시대다. 지구에 부와 문명을 폭발시킨 국제 분업과 자유무역 질서가 80여 년 만에 종말이다. WTO 체제는 터무니없이 잘못 설계됐다는 게 룰 메이커 미국의 신념이다. 국유기업, 보조금, 환율조작 같은 불공정무역으로 중국이 최대 수혜자가 됐고, 미국 산업과 고용은 피폐해졌다는 시각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새 질서 구축을 선언하고 ‘턴베리 체제’라 작명했다. 우선 목표는 중국을 배제한 글로벌 공급망 구축, 최종 목표는 달러패권 유지다. 목표가 적대적이다 보니 실현 수단도 공격적이다. 합리적 정책도구로 인정받지 못하던 관세를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며 조자룡 헌 칼 쓰듯 남발 중이다.


    턴베리 방식은 도발적이다. 유럽, 일본, 한국에서 도합 1조5000억달러 투자금을 뜯어냈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유럽·일본 부흥을 위한 마셜·도지 플랜 지원액(146억달러·현재 가치 약 1500억달러)의 10배다. 우방의 기둥뿌리를 빼내는 백지청구서라니, 적응하기 힘들다.

    한계도 없어 보인다. 인텔 지분 9.9%를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사실상 국유화다. 엔비디아, AMD에서도 중국 수출 허용 대가로 매출의 15%를 받는다. 듣도보도 못한 ‘수출세’다. ‘중국 특색 사회주의’를 비난하더니 ‘미국 특색 국가자본주의’냐는 비아냥이 불가피하다.


    턴베리는 가치전복적이다. 국제 분업 대신 자급자족을 말한다. 미 재무장관은 “핵심 산업에서 자급자족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반도체를 넘어 조선 방산, 여차하면 전략산업 보호라며 철강·에너지·통신·금융사에까지 개입할 태세다. ‘쌀’ 대신 ‘철’과 ‘칩’을 자급자족 대상으로 꿰뚫는 내공과 실행력이 두렵다.

    처방의 대담함은 당면 문제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다. 월가로 대변되듯 미국은 금융자본주의로 세계를 호령해왔다. 그런 미국의 ‘제조업 집착’은 산업생태계 없이는 주권 보전조차 어려운 경제안보 시대의 도래를 웅변한다.


    1950년대 35%에 달하던 미국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은 10%로 급락했다. 무역적자를 달러패권에 기반한 자본흑자로 상쇄하면 된다고 봤지만 오산임이 드러났다. 나랏빚이 물경 5경원(37조달러), 이자가 연 1조달러를 넘어서자 금융으로 버티기도 임계점이다. 달러를 찍어내며 흥청망청하다 감당하기 어려워지자 고통 수출에 나섰다는 원성이 터진다. 일리 있다. ‘기축통화국을 유지하려면 경상적자가 불가피하다’는 내재적 모순을 알면서도 경계심을 해제해버린 안일함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불완전한 시스템에 기름을 들이부은 주범은 중국이다. WTO 최대 수혜국임에도 독식·패권화로 공존의 질서를 깨뜨렸다. 세계경제를 짓누르는 거시 불균형, 무역시스템 경직 등이 그 결과다. 미국에선 ‘중국과의 동행은 망상’이라는 경고가 나온 지 오래다. 리처드 다베니 다트머스대 교수가 “중국을 제압하려면 중국처럼 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주목받은 게 10년도 더 됐다. 트럼프발 과격 조치는 다베니 교수가 ‘전략적 자본주의’라 명명한 국가개입 모델의 여러 논쟁적 제안과 닮아 있다.


    미국은 턴베리를 ‘이단이 정설이 되는 체제’로 규정했다. 당혹스럽지만 피할 수 없다면 남은 선택은 적응이다. 턴베리는 역설적으로 한국의 성취가 얼마나 위대한지 자각시켰다. 뉴 레짐의 주역은 제조업이고, 미국은 제조강국 한국의 반도체·조선·배터리와의 협업에 절실하다. 기술, 지정학 등에서 일본 대만 같은 대안국을 압도해서다. 이쯤 되면 제조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이다.

    대전환의 최전선을 기업이 지탱 중이지만 평가는 박하다. 소고기 사먹으라며 10조원 넘는 현금을 뿌리는 와중에도 기업 지원은 빈약하기 짝이 없다. 여당은 ‘기업=초부자’ 프레임을 거두지 않고 있다. 더 센 상법, 세계 최강 규제의 노란봉투법·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업가정신은 나날이 죽어가는 판이다.


    턴베리 행로는 예측 불허지만 복기해보면 큰 방향은 잡힌다. 한국은 EU 일본과 함께 15%의 낮은 관세를 맞았다. 전통의 맹방 영국(10%) 제외 시 최저다. 관세 협상 태도로 친미·반미를 분류한 뒤 검증된 우방과 함께 새 질서를 구축하자던 ‘마이런 보고서’ 제언대로다. 새 시대에 필요한 건 한국을 ‘미래산업 불침항모’로 만들어갈 새 사고다. 낡은 87체제의 유산인 대결적 노사관, 계급적 기업관은 턴베리 정서와 상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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