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 예산을 720조원대로 편성한다는 소식이다. 올해보다 50조원 이상 늘어난 규모로, 증가율이 8%대에 달한다. 2022년 49조7000억원을 넘어서는 역대 최대폭 증액이다. 정부는 이번주 세부 예산안을 확정해 발표할 계획이다.
경기 침체를 타개하고 인공지능(AI) 등 신산업 투자를 늘려야 하는 상황인 만큼 재정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이긴 하다. 내년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5조7000억원(19.3%) 증가한 35조3000억원으로 잡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8%대 예산 증가율은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선택과 집중을 하려면 기존 지출 항목을 줄이고 선심성 예산도 줄여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찾아볼 수 없다. 경기 회복과 지역 균형 발전을 명분으로 내세우긴 했지만 지방자치단체에 지원하는 지역균형 발전 보조금을 올해 3조8000억원에서 내년 10조원으로 늘린 것이 대표적이다. 내년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에 퍼주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증가폭이 크다.
이재명 대통령은 확장 재정으로 경기를 되살리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혔다. “지금 씨를 한 됫박 뿌려서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당연히 빌려다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성장률이 0%대를 헤매는 상황에서 재정을 과도하게 동원하는 것은 곤란하다. 재정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다. 2023년 56조4000억원, 지난해 30조8000억원의 세수 결손이 났다. 올해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등의 악재로 세수 회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하고, 이것이 고스란히 나랏빚으로 쌓이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
프랑스는 최근 내년 예산을 발표하면서 국방비를 제외한 모든 예산을 동결한다고 선언했다. 재정 건전성이 훼손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미 우리 정부는 30조원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사용했다. 경기 상황을 고려해 확장이 필요하다고 해도 늘리는 예산만큼의 긴축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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