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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SAF, EU 시장 진입의 전제 조건이 되다[ESG 키워드 포커스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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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SAF, EU 시장 진입의 전제 조건이 되다[ESG 키워드 포커스 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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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경ESG] ESG 키워드 포커스 ⑥ EU CISAF




    2025년 6월, EU 집행위원회는 산업정책의 근본적 방향 전환을 선언하는 정책 문서를 채택했다. ‘C(2025) 7600 final’이라는 고유 문서 번호로 식별하는 이 문서는 ‘클린 인더스트리얼 딜 국가보조금 프레임워크(Clean Industrial Deal State Aid Framework, CISAF)’를 공식화한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기존 국가보조금 가이드라인의 연장선처럼 보일 수 있으나, 본질은 전혀 다르다. CISAF는 산업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산업 재편을 유도하기 위한 구조적 정책 수단으로 기능하며, EU 산업정책의 중대한 전환점을 상징한다.


    기존 국가보조금 제도는 외부 충격으로부터 특정 산업을 단기적으로 방어하거나 위기 상황에 대한 예외적 대응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CISAF는 보조금을 일시적 구제책으로만 활용하지 않는다. 탄소중립, 기술혁신, 공급망 복원력, 일자리 창출 등 EU의 산업 전환 전략과 정합적으로 설계된 CISAF는 장기적 산업 재구조화의 제도적 기반을 제공한다.

    특히 CISAF는 에너지 위기 대응을 위한 임시 조치였던 TCTF(Temporary Crisis and Transition Framework)를 대체하며, ‘Net-Zero Industry Act(NZIA)’ 등 EU 핵심 법령과 유기적으로 연계된다. 향후 회원국의 보조금 집행은 EU 전략 기술 기준, 탄소감축 이행 검증(MRV) 체계, 역내 투자 유인 등 명확한 전제 조건을 따라야 하며, 이는 EU의 정책 목적과 일관된 산업 흐름을 제시하는 방향성과도 연결된다.


    이제 CISAF는 단순한 보조금 집행 기준을 넘어 지속가능성 규제를 산업 경쟁력 재편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EU의 전략을 상징한다. 이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산업에 대한 가격 신호를 강화하고, 확보된 재정자원을 전환 기술과 친환경 산업에 우선 재배분한다. 보조금 접근성은 단순한 재정 지원이 아닌, 유럽 산업구조의 전략적 진입 조건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변화는 EU 산업정책이 환경규제를 넘어 산업 전환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CISAF는 글로벌 시장에 명확한 정책 신호를 제공하는 동시에 EU 단일 시장 접근의 새로운 문턱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는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기업에 대한 단순한 규제 대응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시장 진입을 위한 전략적 전환을 요구한다. 지속가능성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진입 요건이다. CISAF는 바로 그 기준점을 명료하게 설정한 새로운 산업정책의 이정표다.




    EU, 프리미엄 시장이자 전환 플랫폼으로 작동


    EU는 다양한 문화와 산업 기반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가장 고도화된 단일 시장 체제를 갖춘 유일한 경제 블록이다. 단순한 경제 규모를 넘어 지속가능성, 기술 표준, 노동과 환경 요건 등 규칙 기반 산업 질서를 전 세계에 수출하는 ‘규범 수출국(regulatory exporter)’으로서 글로벌 산업 전환의 흐름을 주도했다. 이처럼 복잡하고 다층적인 규제를 정책 일관성과 실행력을 바탕으로 통합한 EU의 시스템은 전 세계 기업에 강력한 정책 시그널을 전달하며, 이를 통해 EU는 ‘프리미엄 시장’이자 ‘전환 플랫폼’으로서 작동하고 있다.

    EU의 클린 인더스트리얼 딜과 이를 실행하는 CISAF는 시스템 신뢰성의 정점에 있는 제도이며, 단순한 보조금 기준을 넘어 EU 시장 접근의 새로운 전제 조건으로 기능한다. 이는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제조기업의 중장기 전략 구상에서 가장 우선하는 고려 대상이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 반도체, 수소 등 고부가가치 산업은 EU 내 수요뿐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EU의 정책 변화는 사실상 전 세계 제조업 설계 기준의 향방을 결정짓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지속가능성 중심의 전환이 실현될 경우 EU는 ‘가치 기반 소비자 시장’과 ‘기술 중심 생산지’라는 이중적 위상을 획득하게 되며, 이는 한국 기업에 제품 품질이나 가격 경쟁력을 넘어 기술 적합성, 탄소중립성, 공급망 투명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 전략 재편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EU 시장 진입은 단순한 수출이 아니라 새로운 산업 질서와 기술 표준에 참여하는 전략적 진입점이 된다. 따라서 EU 진입 전략은 단기 수익을 위한 시장 확대만이 아닌, 산업구조의 지속가능한 재설계와 직결된 ‘전환 설계’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 같은 배경에서 2025년 6월에 도입한 CISAF는 기존 TCTF와 명확히 구분된다. TCTF가 러·우전쟁, 에너지 위기 같은 외부 충격에 대응하기 위한 일시적·위기관리형 보조금 프레임워크라면, CISAF는 구조적 전환을 위한 상시적 산업정책 수단이 된다. 특히 CISAF는 NZIA(Net-Zero Industry Act), CRMA(Critical Raw Materials Act) 등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특정 전략 기술 및 소재의 내재화, 공급망 전환, 감축 이행의 MRV 체계까지 포괄하는 다차원적 전환 프레임워크로 기능한다.

    기존 보조금 체계가 산업 보호 중심이라면, CISAF는 산업 설계 재정의, 기술 기준의 정합화, 글로벌 시장에서의 전략적 조건 형성이라는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산업의 구조 전환에서 EU가 설정한 방향성과 기준에 어떻게 정렬할지 요구하는 제도이며, 한국을 포함한 글로벌 기업은 이 전환적 성격을 정확히 읽고 대응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산업구조, 공급망에서 가치망 중심으로 전환

    산업구조는 현재 공급망 중심에서 가치망 중심으로 근본적 전환을 맞이하고 있다. 과거 공급망 중심 체계는 기술 기업이 제품을 개발하고 시장에 출시하면, 소비자가 이를 수동적으로 선택하는 단선적 흐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산업 환경은 소비자의 인식 변화, 지속가능성 기준, 규제와 사회적 압력 등이 기업의 연구개발(R&D)과 제품 전략에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이러한 구조 전환은 단순한 공급 채널의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제품과 서비스에 ‘내재된 가치’, 예컨대 순환성, 탄소중립성, 인권 존중, 자원 투명성 그 자체로 시장에서의 경제적·사회적 평가의 핵심 요소로 작동하는 ‘가치망 중심 시스템’이 부상하고 있다. 이제 제품의 기능이나 가격을 넘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투명하게 공개하는 역량이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특히 핵심 소재에 대한 국제적 접근권 제한과 자원 주권 강화는 기업이 제품 설계 초기 단계부터 전과정평가(Life Cycle Assessment, LCA)를 적용해 제품의 환경영향을 전 주기적으로 평가하는 것을 필수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에코이노베이션(Eco-Innovation)은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되었으며, 제품의 전 과정(원료 채굴, 가공, 생산, 유통, 사용, 폐기)에 걸친 환경영향을 정량적으로 계측하고, 이를 시장과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기술과 결합해 디지털 제품 여권(DPP) 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이는 제품의 내재가치를 구조화된 데이터로 정량화하고, 이를 시장에 투명하게 전달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의 중심에는 EU의 전략 산업 전환 프레임워크인 CISAF가 있다. CISAF는 단순한 재정 보조 수단이 아니라 EU가 전략적으로 설정한 핵심 기술군을 중심으로 산업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는 제도적 기반이다. 이러한 핵심 기술군은 ‘전환의 동력’이 되는 분야로, 에너지·자원 구조를 중심으로 가치사슬을 재편할 수 있는 넷제로 기술군과 미래 소재 기술군이 중심을 이룬다.


    국내 기업이 EU 시장에서 기회를 선점하려면

    EU가 집중하는 기술군은 재생에너지, 전력망 인프라, 그린 수소, 배터리, 탄소포집·저장(CCS) 등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핵심 기술과 희토류, 리튬, 실리콘, 바이오 소재 등 자원의 전략성과 첨단성이 결합된 미래 소재 기술이 이에 해당된다.

    EU가 이러한 기술군에 집중하는 목적은 단순한 가격 경쟁력 확보를 넘어 유럽 내에서 자립적이고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새로운 가치사슬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반도체법(CHIPS) 등과 함께 ‘블록 중심의 기술 표준 경쟁’이라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 기업이 EU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서는 EU의 전략적 재편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단기적 보조금 수혜에 집중하기보다 EU가 설정한 ‘진입 조건’인 기술 적합성, ESG 이행, 투명한 MRV(측정·보고·검증) 시스템, 현지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지역사회와의 연계성 등 EU가 설정한 진입 조건에 부합하도록 내부 구조를 전략적으로 재정렬할 필요가 있다. 특히 MRV는 단순한 보고 체계가 아닌, 데이터 기반의 정량적 이행성과 설계 초기 단계의 투명성까지 요구되는 수준으로 고도화되고 있다.

    또 EU 기업과 협력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EU 기업들은 CISAF를 기반으로 녹색 전환 투자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우리 기업은 이들과의 기술 공동개발, 공급망 참여, 현지 생산기지 구축 등을 통해 ‘협력 기반 경쟁’ 구도로 진입할 수 있다. 이는 기술 확보뿐 아니라 EU의 가치사슬 표준을 내부화하고, 장기적으로는 해당 표준의 공동 결정권까지 확보할 수 있는 전략으로 확장될 수 있다.

    가장 핵심적 내용은 보조금이 산업 경쟁력을 위한 ‘출발선’이 아니라 조건을 충족한 기업에 주어지는 ‘결과’라는 점이다. 이 보조금은 다시 공급망 내 영향력의 배분을 재조정한다. 따라서 보조금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해당 보조금이 의존하는 정책 규범과 기술 표준, 투명성 요건에 대한 접근 방식과 내재화 전략이다.

    결과적으로 EU 산업 전환 정책은 시장 내 ‘기회 구조’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보조금 확보를 위한 진입이 아닌, 정책적 조건에 부합하는 전략적 구조 전환을 통해 시장에 접근해야 하는 상황으로 변화하고 있다. 기술 성숙도, 지속가능성 이행 역량, 디지털 기반의 투명한 커뮤니케이션 체계, 현지화 전략, 지역 공동체 통합성 등 총체적 접근이 요구되며, 이는 곧 기업 전반의 전략 리디자인을 의미한다.

    우리 기업이 EU에서 실질적 기회를 확보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면 EU 규제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EU가 주도하는 전환 가치망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나아가 그 표준을 공동 설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전략적 위상을 끌어올려야 한다. 이것이 곧 ‘보조금 접근’을 넘어서는 ‘전환 주도권’ 획득이며, 산업 전환의 조건화된 환경 속에서 우리가 확보해야 할 미래 경쟁력의 핵심이다.

    유준혁 한국 딜로이트 그룹 One ESG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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