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규 한국ESG기준원 ESG정보분석센터장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다. 이 용어는 대략 2000년대 초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우리나라 상장기업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을 직격하는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여러 연구 결과나 지배구조 전문가들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으로 배당 등 주주환원 미흡, 수익성 낮은 재무적 특성, 회계 투명성 부족, 낙후된 기업지배구조, 사외이사제도의 실효성 미흡, 기관투자자의 역할 부족 등을 지적한다. 정부와 한국거래소를 비롯한 자본시장 유관 기관들은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을 찾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응 방안을 다각도로 모색, 추진 중이다.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회계 제도 개혁, 스튜어드십코드 제정 및 참여 독려, 상장회사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공시, 밸류업 프로그램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상당 부분 해소되거나 확연히 개선됐다는 평가는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지난 6월 4일 출범과 함께 ‘주가지수 5000 시대’ 목표를 제시하며 명확한 방향을 드러냈다. 특히 지난 7월 3일 국회를 통과한 상장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안은 이러한 방향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상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①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 명문화, ② 전자주주총회 제도 도입, ③ 상장회사에 독립이사 도입 및 선임 비율 상향, ④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3%룰 적용 등이 담겼다.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명문화…상법 개정의 성과 주목
상법 개정 내용 중 가장 의미 있는 점은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명확히 규정한 것이다. 이사는 회사 및 주주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며,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확히 규정했다. 이 규정은 공포 즉시 시행되며, 해외 기관투자자들이 우리 상장회사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자주 요구했던 사항이다. 또 이는 ‘G20/OECD 기업지배구조 원칙’과 한국 ‘기업지배구조 모범 규준’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향후 대주주 및 특수관계인과 관련한 거래를 심의할 때 이사회의 판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회사의 분할·합병, 쪼개기 상장,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에서 전체 주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는 책임이 더욱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개정에서는 병행형 전자주주총회를 실시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 것도 주목된다. ‘OECD 기업지배구조 팩트북 2023’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을 포함한 조사 대상 총 49개국 중 40개국이 하이브리드형 전자주주총회를 운영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는 관련 법적 근거가 없는 9개국 중 하나다. 우리나라의 경우 매년 3월 특정일에 주주총회가 집중되는 ‘수퍼 주총데이’ 문제가 있어 주주의 의결권 행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전자주주총회 도입으로 주주들의 참여 기회는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일정 자산 규모 이상 상장사는 2027년 1월 1일부터 전자주주총회를 의무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상장회사에는 기존 사외이사보다 더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강조한 ‘독립이사’를 두게 하고, 그 비율도 기존 4분의 1에서 3분의 1로 강화한 것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 ‘독립이사’라는 명칭은 사외이사에 대해 일부에서 지닌 ‘책임이 덜하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 감사위원 선임·해임 시 최대주주 의결권 제한을 사외이사(개정법에서는 독립이사) 여부와 관계없이 합산 3%룰을 적용하도록 한 것은 감사위원회의 내부통제 및 경영진 감독 기능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 두 제도는 공포 1년 경과 후 시행된다.
지배구조 개선,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 사회적 논의 필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기업가치 제고와 자본시장의 발전을 위해 추가로 논의되는 사항으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규모 확대, 자사주 매입 후 의무적 소각 등을 꼽을 수 있다. 논란이 많은 사항인 만큼 충분한 논의 후 사회적 합의를 거쳐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법적·제도적 개선만으로는 본래 지향하고 기대하는 성과를 온전히 누릴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물론 회사의 지배구조 제도 관련 법 개정은 기업가치 제고 및 지속가능경영의 마중물이 되고, 우리 자본시장 발전을 위한 시금석이 될 것이며, 주가지수 5000 시대를 달성하기 위한 매우 큰 걸음의 첫 발자국으로서 그 의미 또한 상당하다는 점은 명확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앞으로 관건은 법·제도 개선이 실제 기업가치 제고로 이어지도록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마련해 실질적으로 기업을 지원하는 한편 기업의 목소리도 경청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개정·도입된 제도의 실제 운영을 위한 세부적 설계와 운영 방안을 관련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는 다양한 자본시장 관여 주체의 인식 개선이 병행되어야 하며, 경제 외적 요인의 방해 없이 일관된 방향으로 지속되는 정책 추진이 필수다.
일본의 경우 아베 정부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비해 지배구조 수준이 낮다고 인식된 적도 있지만, 최근 완전히 다른 평가를 받고 있다. 아시아 기업지배구조협회(ACGA)가 2023년 발간한 아시아 국가의 기업지배구조평가 결과를 담은〈CG Watch 2023〉에 따르면 일본은 조사 대상 아시아 12개국 중 1위인 호주에 이어 2위인 데 반해 우리나라는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 등에도 뒤처지는 8위에 머물러 있다. 이는 일본에서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정책이 일정 기간 변함없이 꾸준하게 추진됐으며, 일본의 정책이 민관이 함께 꾸준하고 능동적으로 추진된 결과다.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기업가치 제고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다. 완벽한 제도는 없으며,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조금 더 긴 호흡으로 나아가야 한다. 무엇보다 실제 지배구조 제도를 도입하고 운영해야 하는 부담을 고스란히 안고 가는 상장기업과의 동행에 더욱 힘써야 한다. 상장기업은 과거 일부 잘못이나 현재의 미흡함을 지적받는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지속가능경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우리 경제의 핵심 자산이자 동반자다. 상장기업과 함께 성장하며 우리 자본시장을 발전시켜나가야 할 때다.
정재규 한국ESG기준원 ESG정보분석센터장
※ 이 기고문은 필자 개인의 의견으로서 한국ESG 기준원의 공식 견해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