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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헌론 … 담아야 할 것과 담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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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헌론 … 담아야 할 것과 담지 말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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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왕적 대통령제뿐만 아니라
    극단적 대결 등 후진적 정치풍토 바꿔야
    민주적 합의·관용 정착돼야 선진정치 기대

    극단적 대결과 3권분립 침해하는
    제왕적 입법권한도 견제돼야


    헌법 전문에 역사적 사건 넣는 것은 신중해야
    제정 의의와 국가의 근본 가치만 담으면 돼
    미국 독립전쟁·프랑스 혁명 안담아


    또 개헌론이다. 이번엔 이재명 대통령이 꺼냈다. 국회가 중심이 돼 개헌에 나서달라는 주문을 했다.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언급 없이 “5·18 민주화운동 헌법 전문 수록, 국민 기본권 강화, 자치 분권 확대, 권력기관 개혁까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헌법의 모습”이라는 방향을 제시했다. 2022년 대선 땐 대통령 4년 중임제를 공약했으나 이번엔 권력구조 개편을 제시하지 않은 것은 국회 합의 몫으로 남겨둔 것 같다.


    우리 정치사에서 개헌은 약방의 감초 같았다. 1987년 헌법 개정 뒤 3년만에 개헌론이 처음 등장하더니 끊임이 없다. 내각제, 5년 단임 이원정부제, 4년 중임제, 정·부통령제 등 권력구조 개편 방안들이 명멸했다. 개헌이 번번이 무산된 데는 각 정파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결과물이었기 때문이다. 불리한 정국 타개용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대선 후보 시절 득표 수단으로 공약했다가 막상 정권을 잡자 국정블랙홀을 부를 수 있어 외면하기 일쑤였다.

    앞으로 국회가 중심이 돼 개헌 작업을 할 텐데, 아무래도 핵심은 국가 권력구조 개편이 될 것이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국민의 열망은 극한 정치 갈등의 원인인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라는 것”이라고 했다.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책임총리제 등 기존 여러 개헌안에 담긴 대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물론 정치 선진화를 위해선 제도적인 틀부터 바로잡아 주는 게 맞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된다. 제도 자체도 완벽한 게 있을 리 없다. 중임제는 재선을 위한 포퓰리즘을 부를 수 있고, 의원내각제는 극단적인 다수당의 횡포를 낳을 수 있다. 이원집정부제와 책임총리제 역시 극단의 갈등 속성이 내재돼 있다. 이 때문에 후진적 정치 풍토를 바꾸는 노력도 함께해야 한다. 제도만 바꿔놓고 만성적 대결 구도가 여전하고, 권위주의적 시절 대통령과 당의 수직적 풍토가 여전하다면 허사다. 민주적 방식의 합의와 상호 관용, 자제 등 정치적 기제(機制)가 제대로 돌아가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춰야 진정한 정치 선진화를 기대할 수 있다. 썩은 물만 갈아놓고 오염된 물고기는 그대로면 무슨 소용이 있나.


    개헌을 한다면 제왕적 대통령제만이 아니라 입법부 과잉 권력도 손을 봐야 한다. 입법부는 국정감사, 인사청문회, 공직자 탄핵권, 해임건의권, 국정조사권, 상설특별검사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행정부를 압도한다. 반면 행정부는 국회가 쏟아내는 입법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 행사 외에 마땅한 견제 장치가 없다. 과거 대통령 국회 해산권이 있었으나 ‘87헌법’에서 삭제됐다. 이뿐만 아니라 여권은 감사원 국회 이관까지 추진하고 있다. ‘사법부 민주적 통제’ 미명으로 판사 선출제, 표적 수사 의심 시 재판부 영장 기각 의무화, 대법관 대폭 증원, 법원 판결을 헌법소원 대상에 포함시키는 사실상의 4심제 도입 등을 외치며 대의민주주의 근간인 ‘견제와 균형’이라는 삼권 분립 취지를 무너뜨리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국회의원 특권은 또 어떤가. 여야는 선거 때마다 헌법에 규정된 불체포 특권을 없애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 개헌론에선 이에 대한 언급은 일체 없다.

    개헌을 한다면 정체성도 바로잡아야 한다. 헌법에는 경제력 남용 방지, 토지소유권 제한, 특정 집단 보호 등 시장경제와 사회주의적 요소가 섞여 있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 때 여권이 제시한 개헌안에는 사회적 경제, 경제민주화, 토지공개념 강화, 동일노동 동일임금, 노동삼권 확대, 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이 들어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려는 시도도 있었다. 2018년 국회 헌법 개정안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빼고 노조 경영 참여 등을 넣었다. 다수당인 여당은 이런 기조를 관철시키려 할 것이다. 헌법 119조 1항(대한민국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일반 법률로 규정해도 충분한 것들을 줄줄이 담는 것은 헌법의 최소한의 규율 원칙을 정면으로 어기는 것이다. 헌법 과잉, 헌법 만능으로 헌법의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는 처사다.


    헌법 전문에 역사적인 사실을 담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여야는 5·18 민주화운동을 헌법에 넣자고 한다. 각 지역에선 동학, 2·28 운동, 부마항쟁, 마산의거, 4·3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촛불 시위 수록 주장까지 나온다. 헌법 제정의 의의, 제정 과정, 국가의 근본 가치를 밝히기 위한 전문의 기본 취지를 망각하는 것이다. 미국은 헌법 제정의 목적만 있을 뿐 독립전쟁, 노예 해방 등 역사적 사건은 일절 없다. 전문은 우리나라의 3분의 1에도 못 미쳐 48개 단어에 그친다. 프랑스 헌법 전문에도 프랑스대혁명은 없다. 전문 자체가 없는 나라도 많다. 역사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전문에 넣게 되면 헌법의 보편성 정신을 해치고, 정권 교체 때마다 개헌해야 하는 일이 반복될 수 있다. 헌법은 장바구니가 아니다. 역사적 사건을 기린다면 다른 방식으로 하면 된다.

    홍영식 한국경제매거진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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