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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법률이 기업을 바꾼다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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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 칼럼] 법률이 기업을 바꾼다는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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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내년 공휴일이 하루 줄어든다는 기사를 보면서 살짝 놀랐다. 달력의 빨간 날(토요일 포함)이 총 118일로, 대략 1년의 3분의 1을 쉴 수 있어서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받는 최소 연차 휴가(15일)를 합치면 휴일 수가 총 133일로 늘어난다. 1주일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주 4.5일을 일하는 셈이다. 여기에 연차 휴가는 근속 기간에 비례해 25일까지 늘어나고, 별도의 각종 경조사 휴가도 있다.
    대기업은 이미 주 4.5일 시행
    이재명 정부가 추진한다는 주 4.5일 근무제는 대부분 대기업과 공공기관 근로자가 이미 누리고 있는 현실이다. 정작 저녁이 있는 삶, 과로사 예방이 필요한 근로자는 5인 미만의 영세 중소기업 직원들이다. 상당수는 20년 전부터 시행되고 있는 주 5일제 혜택도 체감하지 못한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86%(약 540만 개), 근로자의 30%(770만 명)가 이런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500만 명이 넘는 자영업자의 상당수도 휴일 개념 없이 일하고 있다. 이들에게 주 4.5일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다.

    법률을 바꿔 일과 삶을 획기적으로 개혁할 수 있다는 기대는 종종 현실과 괴리된다. 특히 세계 무대에서 경쟁해야 하는 기업에 영향을 주는 법과 제도는 더욱 그렇다. 업의 특성과 개별 기업이 처한 상황이 제각각인데, 투박한 법률로 다양한 기업을 일괄 규제하기가 쉽지 않다.


    민주당 정부가 자본시장 밸류업 차원에서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을 보자.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가 개미 투자자보다 대주주 이익을 우선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자본시장은 기본적으로 주주의 권한과 이익을 주식 수에 비례해 나눈다. 그동안 문제가 된 기업 지배구조는 과거 수십 년간 누적된 복잡한 지분 구조, 과도한 상속증여·배당세, 정권 때마다 달라지는 법과 제도 등 구조적 요인에서 비롯된 측면이 많다. 이런 해묵은 문제들을 놔두고 상법 조항을 손본다고 기업 가치가 올라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업들은 경쟁력을 훼손하는 규제와 제도가 새로 생기면 생존을 위해 우회 경로를 찾는다. 해고를 어렵게 만드는 고용 규제를 강화하자 직접 채용 인력을 줄이고 하도급을 늘려 전체 인건비 부담을 낮췄다. 임원 수시 인사를 통해 핵심 인력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동시에 보상을 강화한 것도 궤를 같이하는 대응책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강제하자 비정규직을 2년마다 새로 뽑고 있다. 선의의 규제가 다수의 피해자와 부작용을 초래한 대표적 사례다.
    상법 바뀐다고 밸류업 안돼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법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규제를 상징하는 법률과 공무원은 나날이 불어난다. 지난 5년간 늘어난 중앙부처 법령(법률과 시행령)이 612개에 이른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1031개 법령이 새로 생겼다.


    새로운 법과 제도로 사회를 단번에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1980년대 운동권의 주체사상만큼 낡고 위험하다. 많은 경우 주 4.5일제 공약처럼 현실의 문제를 왜곡하고,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증폭된다. 법과 제도를 바꿔 사회를 개혁하겠다는 시도를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는 없지만 이 과정에 우리 사회와 경제의 복잡성, 다양성은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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