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셰익스피어 작품은 존재할 수 없지 않았을까? 세기를 넘어 수많은 독자를 웃고 울게 한 위대한 극작가, 그의 사랑은 과연 희극이었을까 아니면 비극이었을까.2년 만에 돌아온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바로 이런 궁금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햄릿>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엣> 등 희극과 비극을 넘나들며 수많은 걸작을 남겼지만, 그의 사랑 이야기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셰익스피어의 사랑을 상상해 만든 동명의 영화가 먼저 나왔고, 이를 무대화한 작품이 연극 ‘셰익스피어 인 러브’다. 2014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에서 첫선을 보인 뒤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무대에 올랐다. 국내에선 2023년 초연한 뒤 2년 만에 다시 관객들을 찾았다.
배경은 16세기 런던. 연극 속 셰익스피어는 로미오 뺨치는 열렬한 사랑꾼이다. 연극 대본을 쓰는 작가 셰익스피어는 어느 날 무도회장에서 부유한 상인의 딸 비올라를 보고 한눈에 반한다. 로미오가 발코니에 선 줄리엣을 향해 구애했듯, 셰익스피어도 발코니 아래에서 비올라에게 사랑의 언어를 속삭인다. “나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할까요? 그대는 더 사랑스럽고 더 따스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사랑은 순탄치 않다. 비올라는 이미 웨섹스 경이라는 계산적 인물과 정략결혼을 하기로 한 상태.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가 셰익스피어의 가슴 아픈 경험담에서 비롯됐다는 허구적 설정이 절절한 연기와 함께 설득력을 더한다. 실제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알면서도 열정적이고 낭만적인 셰익스피어의 모습에 빠져들지 않을 수 없다.
연극 속에선 셰익스피어의 또 다른 작품의 흔적도 엿볼 수 있다. 비올라가 당시 여성의 연극 출연이 금지된 현실을 피해 남장하고 셰익스피어의 무대에 오르는 장면에선 <십이야>가 겹쳐 보인다. 고리대금업자 페니맨이 극장주 헨슬로에게 돈을 갚지 않으면 코를 베겠다고 위협하는 장면에선 <베니스의 상인>이 떠오른다.
뮤지컬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감각적인 무대 연출이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의 방, 비올라의 저택 등 중심 배경이 펼쳐지는 메인 무대 아래에는 유쾌한 선술집을 재현한 또 다른 무대가 숨겨져 있다. 이 무대가 바닥을 뚫고 올라오며 장면이 전환되는데, 연극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규모의 연출이다.
공연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오는 9월 14일까지 이어진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