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들은 여전히 저탄소·자원 효율 산업에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ESG’라는 용어 사용을 피하고 있을 뿐이다.”미셸 드머스 바운들리스임팩트리서치앤드애널리틱스 최고경영자(CEO)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는 지속 가능성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리브랜딩일 뿐”이라며 “ESG산업 투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했다.
한때 고공 행진을 이어가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는 미국 보수 진영의 반격과 시장의 회의론에 직면하며 성장이 주춤한 듯 보이고 있다. 그러나 ESG 이름표를 단 채권, 대출, 펀드, 투자 등 자산은 여전히 혁신·녹색 산업으로 흐르고 있다.
블룸버그인텔리전스(BI)는 글로벌 ESG 금융자산이 2030년 35조달러(약 4경8737조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2024년 30조달러인 ESG 자산은 연평균 2.6% 완만하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ESG 규제 교착, 미국 시장 위축, 글로벌 무역 리스크 등을 반영한 추정이다. ESG 요인을 고려한 주식, 채권,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 모든 유형의 금융자산에서 긍정적 신호가 관찰되고 있다.
◇ ESG 채권, ETF 동반 성장
실제 ESG 채권 및 대출 시장은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해 지속가능채권 및 대출 규모는 13조6000억달러였다. 2030년까지 연평균 6.6% 증가해 20조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블룸버그는 기후변화 대응 및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자금 수요로 ESG 채권이 시장 평균을 웃도는 성장률을 유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ESG 펀드에도 자금이 꾸준히 유입되는 상황이다. 올해 1월 기준 글로벌 ESG ETF 운용자산은 7641억달러(약 1086조원)로, 2023년 3월(5226억달러) 대비 46% 늘었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지역의 운용자산은 같은 기간 3481억달러에서 5463억달러로 증가하며 성장을 주도했고, 미주는 1162억달러에서 1411억달러, 일본은 252억달러에서 303억달러로 불어났다.블룸버그는 ESG ETF 운용자산이 전반적으로 늘어나 2030년까지 1조3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연평균 약 10%의 증가율을 반영한 수치다. 특히 유럽이 전체 수요의 70%를 견인할 것으로 예상되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일 전망이다.
특히 미국은 ESG에 대한 정치적 반발 정서가 강한데도 일부 주(州) 단위에서 독자적 기후 목표를 고수하거나 인공지능(AI)과 기술 중심의 ESG 투자를 강화하는 등 시장이 분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반(反)ESG 기조 속에서도 미국 내 ESG 관련 자산 유입은 일정 수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 탈탄소 테마 투자 선호도 높아
ESG 펀드는 ‘테마’를 중심으로 성장세가 가파르다. 기후 테마 펀드는 최근 2년간 수탁액이 150% 증가해 30억달러에 육박했다. 반면 ESG 패시브 펀드는 같은 기간 자산이 22% 쪼그라들었다. 투자자들이 기후 솔루션, 친환경 인프라 등에 관심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업의 ESG 평가 점수를 토대로 운용하는 ESG 패시브 펀드의 자금이 유출되는 것이기도 하다.이와 관련해 마니시 방가드 블룸버그 퀀트·ESG 투자 전략 담당은 “자연과 사이버보안 같은 주제가 주목받고 있다”며 “지속 가능한 소재는 모빌리티 솔루션 개발, 전환 상품 수요 및 AI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전기차 배터리와 양·음극재, 전해질 등을 제조하는 기업들이 ESG ETF에 다수 편입하는 모습이다. 아델린 다이브 BI ESG 리서치 총괄은 “에너지 전환과 관련한 실질적 기술 역량이 ESG 펀드 편입 여부를 좌우한다”고 분석했다.
기후 기술, AI, 반도체, 소재 기업이 ESG 펀드에 대거 포함되는 데는 분명한 배경이 있다. 이들 기술 기반 산업이 실제 탄소감축과 순환경제 혁신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탄소국경조정제, 국제해사기구(IMO)의 선박 탄소세 부과 등 산업 여파가 큰 정책도 ESG 자금 유입을 이끌고 있다. 특히 AI 관련 에너지 수요가 급증하면서 ‘친환경 AI 인프라’ 투자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로 기업들은 ESG·친환경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한경ESG가 유럽을 대표하는 유로스톡스50 기업 중 에어버스, 알리안츠, ASML홀딩, BMW, 도이체텔레콤 등 24개 주요 상장사의 ESG 투자금을 비교한 결과, 지난해 친환경 자본 지출액(EU 녹색분류체계 적합 CapEx)은 전년 대비 3.03%포인트 상승한 47.1%(전체 투자 대비)로 집계됐다. 녹색산업에 적합한 설비와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가 증가했다는 의미다.
정부 차원에서도 ESG와 첨단산업 간 연계를 강화하는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3월 산업통상자원부와 금융위원회는 50조원 규모의 ‘첨단전략산업기금’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기금은 반도체, 2차전지, 수소, AI, 로봇 등 미래 전략 산업에 자금을 공급하고 K택소노미에 부합하는 녹색경제 활동에는 금리 인하 등 우대 조건이 부여된다. 특히 전기차, 전력망, 수소 인프라 등 녹색 인프라 투자를 포함한 분야에서 ESG 금융을 적극적으로 공급할 예정이다. 혁신 산업으로 자금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이승균 한경ESG 기자 oliv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