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내셔널GC(파72)에서 열린 시즌 첫 메이저 대회 마스터스 2라운드는 랑거의 인생, 그리고 마스터스의 역사에 중요한 기점이 될 무대였다. 마스터스 2승 보유자인 그는 올해를 자신의 마지막 마스터스로 삼겠다고 일찌감치 공언해왔다. 이번 대회에서 그가 커트 통과에 성공하면 최고령 본선 진출자 기록을 새로 쓸 수 있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3승, 유러피언투어 42승을 보유한 랑거는 두번의 메이저 우승을 모두 마스터스에서 거뒀다. 1982년 처음으로 오거스타 내셔널GC에 입성한 그는 1985년과 1993년 두차례 그린재킷의 주인이 됐다. 지금은 시니어 무대인 챔피언스 투어에서 압도적인 강자로 군림하고 있다.

이날 경기 중반까지만 해도 그는 새 역사에 거의 다가선 듯 했다. 12번홀(파3)에서 버디를 잡으며 중간합계 이븐파를 만들어 예상 커트 통과 기준인 2오버파를 훌쩍 웃돌았다. 하지만 15번홀(파5)에서 샌드웨지로 친 세번째 샷이 내리막 경사에 떨어져 물에 빠지며 더블보기를 기록해 다시 한번 기로에 섰다. 랑거가 이날 가장 뼈아프게 느낀 홀이다. 그는 "완벽한 웨지샷을 쳤는데 내리막에서 바람을 맞고 뒤로 흘러내렸다"며 "그 홀이 아니었다면 이번 주말에 경기를 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커트탈락 경계선에 선 채 나선 18번홀, 랑거는 완벽한 티샷을 쳤지만 회심의 파 퍼트가 2.5cm 가량 비껴가며 3오버파로 경기를 마쳤다. 1타 차이로 커트 통과에는 실패했지만 브룩스 켑카, 빌리 호셸, 캐머런 스미스보다 좋은 스코어였다. 1,2라운드에서 그는 페어웨이 적중률 93%를 기록하며 출전선수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42번째 마스터스를 마무리하는 퍼트를 마친 뒤 그는 바이저를 들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린 끝에서 프레드 리들리 오거스타내셔널 회장이 그를 맞았고 가족들이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축하의 포옹을 건넸다. 랑거는 이번 대회 이틀간 자신의 가방을 들고 매 홀을 함께 누빈 막내아들 제이슨과 진한 포옹을 나누며 '라스트 댄스'를 마무리했다.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된 랑거는 독일 바이에른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9살 무렵, 돈을 벌기 위해 캐디로 일하며 골프를 접했고, 회원이 버린 골프채로 골프를 시작해 클럽 소속 프로가 됐다.
그는 "다른 이들의 골프를 돕는 것으로 먹고 살줄 알았던 내가 세계 최고의 대회에 출전하고, 두번의 우승을 거두고 지금까지 출전한다는 것은 동화같은 일"이라고 돌아봤다. 이어 "어제 1라운드부터 매 홀 패트런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눈물을 참고 경기하기 위해 애썼다"며 "이곳에서 첫 라운드를 치렀을때 바로 사랑에 빠졌고, 두번이나 우승하고 수십년간 이 대회에 참가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의 라스트 댄스를 앞당긴 15번홀 플레이에 대해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긴 클럽을 잡겠느냐"고 묻자 랑거는 "그래도 제가 했던 대로 다시 한번 할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그 홀에서 내 샷은 완벽했다. 내가 목표한 지점에 정확히 떨궜지만 바람이 도와주지 않아 7타를 쳤다"며 "그게 골프다. 가장 멋진 게임이지만, 때로는 가장 잔혹하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 랑거와 함께 최고령 커트 통과를 노렸던 또다른 노장 프레드 커플스(65·미국) 역시 이날 5타를 잃고 이틀간 합계 4오버파에 그치며 탈락했다. 현재 마스터스 최고령 커트 통과 기록은 커플스가 기록한 2023년 63세 187일이다.
오거스타=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