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열풍이 전 세계 투자 지형을 바꾸고 있다. AI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반도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인프라 등 관련 산업에 막대한 자금이 몰리고 있다. 지난해 엔비디아(NVIDIA) 주가가 200% 넘게 급등하며 AI 반도체 붐을 주도한 데 이어, 올해도 반도체 및 데이터센터 기업들의 성장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반도체·데이터센터, AI 수요 폭증
AI 개발 경쟁이 심화하면서 AI 서버를 가동하기 위한 데이터센터 및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AI 반도체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기록하며 주가가 240% 상승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오는 2028년까지 1년 주기로 최신 인공지능(AI) 반도체를 내놓겠다고 밝혔다.미국 반도체 기업 AMD와 인텔도 AI 반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기 위해 대규모 연구개발(R&D) 투자에 나섰다. AMD는 올해 AI 가속칩 ‘MI300X’ 시리즈의 생산을 본격화하면서 ‘엔비디아의 대항마’로 떠올랐다. 인텔 역시 AI 서버용 반도체 ‘가우디3’ 출시를 예고하며, AI 시장 재진입을 노리고 있다.
데이터센터 산업도 AI 붐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다. AI 모델을 학습하고 실행하는 데 막대한 연산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클라우드 업체인 아마존웹서비스(AWS),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구글 클라우드 등은 올해 데이터센터 확장 계획을 발표하며 시장 지배력을 높이려 하고 있다.각국 정부는 AI 반도체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면서 이에 대한 규제 및 지원 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반도체 패권 경쟁이 AI 반도체 분야로 확대되면서 지정학적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AI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제한하는 추가 규제를 발표했다.
중국은 AI 반도체 개발에서 미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적인 기술 개발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 최대 반도체 기업 SMIC는 최근 새로운 7나노미터(nm) 공정을 도입해 엔비디아의 제품과 경쟁할 수 있는 AI 칩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화웨이는 자체 개발한 AI 반도체 ‘어센드’ 시리즈를 내놓으며 AI 반도체 시장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AI 관련 자산에 ‘베팅’
AI 산업 성장에 대한 기대가 커지면서 글로벌 투자자들도 AI 관련 기업과 인프라에 대거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증시에서 가장 많은 투자금을 끌어들인 상장지수펀드(ETF)는 AI 관련 ETF들이었다. 대표적으로 ‘글로벌X AI&테크 ETF(AIQ)’는 지난해 수익률이 70%를 넘겼다.전통적인 반도체 ETF들도 급등했다. ‘반에크 반도체 ETF(SMH)’는 지난해 90% 이상 상승했으며, ‘아이셰어즈 반도체 ETF(SOXX)’도 80%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올해도 AI 수요 증가로 인해 반도체 기업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관련 ETF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증가로 인해 전력과 냉각 인프라 관련 기업들 역시 투자자 주목을 받고 있다. AI 서버는 일반 데이터센터 대비 3~5배 이상의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전력망 구축과 전력 공급 기업들의 성장성이 부각되고 있다.
미국의 전력회사 넥스트에라 에너지는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로 인해 주가가 연초 대비 15% 상승했다.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을 공급하는 슈나이더 일렉트릭과 에머슨 일렉트릭 등의 기업들도 ‘AI 붐’의 수혜주로 꼽히고 있다.
◇AI 투자, 과열 우려 속 신중론도
AI산업에 대한 낙관론이 확산하면서 관련 주식과 펀드들이 급등했지만, 일각에선 지나친 기대감이 조정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AI 반도체를 공급하는 기업들의 주가수익비율(PER)이 평균 40~50배를 기록하는 등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높은 수준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AI 관련 주식들이 단기적으로 과열될 가능성이 높다”며 “주요 반도체 기업들의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현재 밸류에이션이 정당화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반면 AI 산업이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장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반론도 있다. AI가 산업 전반에 걸쳐 빠르게 적용되면서 AI 반도체,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전력 인프라 등의 수요가 장기적으로 지속될 것이라는 관점에서다. 블랙록은 최근 보고서에서 “AI는 단기적 거품이 아니라 경제 구조를 변화시키는 근본적 혁신”이라며 “반도체와 데이터센터뿐 만 아니라, 전력과 네트워크 인프라 등에서도 장기적인 투자 기회가 많다”고 분석했다.
이소현 기자 y2eonlee@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