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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정치인의 듣기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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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정치인의 듣기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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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합디다. 그런데 그건 사공이 많아서가 아니라 ‘자기 말만 말이다’ 해서 그래요. 상대가 누구든 몸을 낮추고 귀 기울이면 버릴 말 하나 없어요. 귀만 열어둬도 분명 더 좋은 곳에 도착할 겁니다.”

    가끔은 드라마가 더 현실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드라마 시티홀의 한 장면에서 말단 공무원이 시장이 돼 돌아왔을 때 시의회 의장이 조언을 건네는 장면을 보고서 나는 묘한 기시감에 빠졌다.


    그 기시감의 뿌리를 오래전 기억에서 찾았다.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야 했던 그때, 그날들의 기억.

    당시 나는 평범한 가정의 아내로 두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녹색 어머니회 활동을 하면서 꼬박 9년, 아이들과 통학을 함께했다. 그렇게 학교와 지역의 일을 소소하게 돕던 그때, 통보 하나가 떨어졌다.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가 하루아침에 국립에서 공립으로 전환된다는 교육부의 방침이 내려진 것이다. 행정 편의에 따라 이뤄진 일방조치였다. 방침 하나로 공교육의 산실인 학교를 허물어지게 둘 수 없었다. 부당함을 전달하려면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사방을 뛰어다니다가 지역 국회의원을 만났다.


    내 말을 들어준다고 해서 문제가 당장 풀릴 거란 보장은 없었다. 그럼에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동아줄을 잡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이게 내가 느낀 첫 정치의 효용감이었다. 나는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 정치의 필요를 발견했다. 그렇게 평생 무관할 것 같았던 정치가 내 일상으로 들어왔다.

    이후 정치를 돕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주저했다. 과연 정치가 내 일이 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자문했다. 그때 그날 내가 경험한 정치의 효용을 떠올렸다. 그때의 나처럼 들어줄 사람을 찾아 방황하고 있을 이들을 생각했다. 들어드림으로써 짐을 덜어드리고 싶었다.


    “정치를 해보려고요.” 아무 말 없이 내 결심을 듣던 아버지는 마지막에 딱 한마디를 보탰다. ‘입은 하나고 귀는 두 개인 이유’를 되새기라고 했다. 내 속을 훤히 꿰고 있는, 삶의 멘토다운 조언이었다.

    “도와주세요”라고 말해본 사람은 안다. 그 한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그래서 나는 정치를 한다.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도록, 용기를 덜 내도 되도록 먼저 찾아가 몸을 기울인다.


    어느새 지역의 공공재가 된 내 휴대폰은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울린다. 들어줄 사람을 찾는 저 간절한 울림에서 내 정치의 쓸모를 본다.

    정치는 말이고 말이 곧 정치다. 맞다. 그러나 읽어야 쓸 수 있듯이 먼저 들어야 말할 수 있다. 어느덧 정치초년병에서 서울시의회 의장으로 성장한 나는 감히 생각한다. 정치인에게 자격시험이 필요하다면, 그건 듣기평가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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