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마지막 변론이 어제 헌법재판소에서 열렸다. 윤 대통령은 최종 진술에서 “국민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며 사과로 시작해 계엄의 정당성과 탄핵의 부당성을 설파하는 데 중점을 뒀다. 계엄은 야당의 줄탄핵, 입법 폭주, 예산 일방 삭감 등에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는 것이다. 주권 침탈 세력과 반국가 세력이 연계해 국가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도 계엄의 이유로 꼽았다. 계엄 성격을 두고선 군의 임무를 경비와 질서 유지로 제한해 계엄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라고도 했다. 그러나 기대했던 통합 메시지를 제대로 담지 않은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 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 등 국회 측은 계엄으로 민주주의를 짓밟고, 국회를 침탈했으며, 헌법을 유린해 파면이 마땅하다고 맞섰다. 선출된 사람 스스로 선거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면 민주공화국은 존립할 수 없다며 어두운 과거가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탄핵 증거가 드러난 만큼 이보다 위헌, 위법이 없어 국정을 맡길 수 없다고 공격했다.
주목되는 것은 윤 대통령이 직무 복귀 시 “잔여 임기에 연연 않겠다”며 조속한 개헌 추진 입장을 밝힌 점이다. 헌재에서 탄핵이 기각 또는 각하되더라도 남은 임기에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개헌에 대해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부정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탄핵 인용 여부를 떠나 국정의 큰 혼란이 예상되는 만큼 개헌은 불가피한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여야는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길 바란다.
이제 양측의 법리 공방은 끝났고, 헌재의 심판 결정만 남았다. 변수가 없는 한 약 2주 후 선고가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데,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시기다. 헌재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거센 소용돌이가 몰아칠 것이라는 불안은 진작부터 엄습해 온다. 주말마다 경찰 차벽을 두고 벌어진 탄핵 찬반 집회는 분단 상황과 같다는 말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악마’ ‘만행’ ‘좀비’ ‘미치광이’ ‘발광’ 같은 온갖 증오의 말을 쏟아내며 서로를 악마화하는 것은 단순 기싸움을 넘어선다.
광장의 흥분이 극단의 대결과 충돌로 흐르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헌재의 역할이 막중하다. 헌재의 결정이 논란 종결이 아니라 불복과 갈등을 폭발시키는 도화선이어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 헌재는 외부 압력에 흔들림이 없어야 하고, 법적 논리와 정당성에 한 치의 의심을 남겨선 안 된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재가 절차적 정당성과 불공정 시비를 낳은 것은 우려스럽다. 탄핵 심판의 핵심인 내란죄 철회 권유 및 재판관들의 이해 충돌, 이념 편향성, 검찰 신문조서 증거 채택 등 끝없는 논란으로 헌재의 위상을 스스로 훼손했다. 헌재는 남은 평의에서라도 흠결을 보완해 후환을 남기지 말길 바란다. 헌정 질서의 보루인 헌재가 공정·신뢰성이 훼손된다면 법 질서의 근간을 해치는 것이다.
걱정스럽긴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두고 장외 집회에 가세해 의도적으로 탄핵 찬반 편을 가르는 양상마저 보인다. 대내외 엄중한 상황을 감안하면 정치권이 갈등을 조장할 때가 아니다. 미국은 관세 폭탄 등 잇단 자국 우선주의를 노골화하고 있고, 중국은 반도체 등 핵심 기술에서 한국을 추월한 마당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여야가 다투더라도 최소한 국정은 돌아가게 해야 마땅하다. 기왕 논의를 시작한 국민연금, 반도체지원법 등 다급한 과제를 나라 미래와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처리해야 한다. 이 판에 야당이 상법 개정안, 양곡관리법 등 반시장 입법 폭주로 정국을 다시 파탄으로 몰아간다면 ‘먹사니즘’ ‘잘사니즘’의 정면 배반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에 따른 안보 상황도 불확실성투성이다. 급물살을 타는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끝난다면 안보 정세의 추는 한반도로 옮겨올 것이다. 정교한 대비가 필요한데, 공백인 안보 수장 임명 등 야당도 협조할 건 해야 한다. 국민도 일상에 매진하면서 헌재 결정을 차분하게 기다려야 한다. 모두의 자제가 더없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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