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일 찾은 영국 런던 템스강 남부의 대형 복합 쇼핑몰 ‘배터시발전소’는 가족 단위 시민과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옛 화력발전소를 개조한 이곳에선 요즘 굴뚝 속에 설치된 고속 엘리베이터 전망대 ‘리프트109’가 인기다. 런던에 있는 A사 관계자는 “몇 년 새 배터시발전소는 런던 관광객이 꼭 들러야 할 ‘힙플레이스’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역사가 숨쉬는 도심 재개발

같은 날 프랑스 파리 센강 연안 13구에 있는 리브고슈에선 우뚝 솟은 고층 건물을 배경 삼아 파리지앵이 한가롭게 강변을 거닐고 있었다. 철도 노선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도심과 단절되고 심하게 낙후했던 이 지역은 파리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베누아 에르노아 파리시 도시개발공사 리브고슈 프로젝트 담당 국장은 “노후화한 지역을 20년에 걸친 노력으로 가장 현대적인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고 말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 선진국들은 시간이 흘러 쓸모없어진 공간을 되살려 혁신을 이뤄냈다. 수십 년째 가동되지 않은 화력발전소, 버려진 철길 부근 야적장, 부둣가에 방치된 창고 등을 말 그대로 갈아엎어 랜드마크로 변모시켰다.
1930년대 지어진 배터시화력발전소는 한때 런던 주요 건물에 공급되는 전력의 5분의 1을 담당했다. 1983년 비용 문제로 가동을 멈춘 뒤 방치되다가 2012년 대대적 개발이 시작됐다. 영국 정부는 발전소의 역사적 의미를 존중해 외관은 그대로 둔 채 내부만 6층짜리 복합 공간으로 개조했다. 10년간 90억파운드(약 16조원)를 투입하고, 파리 에펠탑보다 세 배 넘는 강철을 사용했다.
대기업 유치로 활력 되살려
재건축이 마무리되고 대중에 공개된 건 2022년. 개관 이후 약 2년간 2200만 명 넘는 방문객이 배터시발전소를 찾았고, 지난해 여름(7~8월) 발전소에 입점한 상점들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 늘었다. 그 중심엔 보일러실로 쓰이던 공간에 들어선 애플의 새 영국 본사가 있다. 영국에서만 일자리 55만 개를 창출한 애플 사무실은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기 충분했다. 빅테크 자본을 영리하게 활용해 인력과 돈이 자연스럽게 몰리는 공간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왕립건축사협회(RIBA) 공인 건축가 이재혁 자이아(JAIA)건축사무소 대표는 “템스강 북쪽의 도시 재생이 구글 영국 본사로 대표된다면, 남쪽은 애플이 그 역할을 맡았다”고 말했다.프랑스 국립도서관 주변 오스테를리츠역과 마세나 거리 사이 일대를 지칭하는 리브고슈 부지 역시 1990년대 중반까지 용도를 잃은 폐철로와 폐창고가 가득했다. 파리시는 1991년부터 이 지역 부지를 대거 사들여 오래된 철길을 지하화해 그 위를 인공 덱으로 덮는 방식으로 주거지, 대학, 녹지 등 시민 친화적 공간을 조성했다. 특히 유럽 언론의 자존심으로 손꼽히는 르몽드 본사를 유치해 국립도서관, 국립대, 국가 대표 언론사로 이어지는 ‘뉴 아카데미아’(신학술 거점)를 탄생시켰다.
런던=장서우/파리=정희원 기자 suwu@hankyu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