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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핵화 대신 군축협상?…트럼프 2기 대북정책 '안갯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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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 후보자가 14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인사청문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nuclear power)’으로 표현한 것은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고수해 온 ‘북핵 불인정’ 기조를 뒤집은 것이다.

그가 사용한 핵 보유국 표현은 국제법으로 핵무기 개발과 보유를 인정받은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5개 ‘핵무기 국가(nuclear weapon state)’와는 다르다. 하지만 금기를 깬 점에서 미국의 대북 정책 변화를 예고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 한·미 정부 “변한 것 없다” 수습
국제사회는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을 비공인 핵 보유국,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보고 있으나 북한에 관해서는 아직 이를 분명히 인정하지 않는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북한은 인도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핵능력 과시 후 기정사실화라는 경로를 취하고 있다”고 짚었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는 것은 이런 목표가 달성된다는 뜻이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 원칙엔 변함이 없다”고 강조하며 혼란을 수습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이날 외신센터 기자회견에서 “그 사안(북핵)에서 우리 정책은 변한 것이 없다”며 “차기 안보팀이 이를 어떻게 규정할지 말하기는 어렵지만 우리(조 바이든 정부)는 이를(북한 핵 보유국 지위) 인정하는 데까지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도 같은 기조를 확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북한 비핵화는 한·미·일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일관되게 견지해 온 원칙”이라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상 북한은 절대 핵 보유국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도 “한·미는 긴밀한 공조 아래 북한 비핵화 목표를 견지하고 있다”며 “북한 핵 보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기존 입장은 불변”이라고 했다.

헤그세스 후보자가 북핵 문제 인식이 부족해 벌어진 해프닝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벤자민 엥글 단국대 초빙교수는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에 “미국의 접근 방식이 변화한 것을 확인하려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 용어를 반복해 사용하는 것을 봐야 할 것”이라며 “(이번 언급이) 헤그세스의 경험 부족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 핵 보유국 인정, 군축 거래로 이어져
한반도 비핵화라는 목표가 과거에 비해 비현실적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과 공화당이 작성한 정강에서는 처음으로 한반도 비핵화가 언급되지 않았다.


당시 양당은 비핵화를 거론하지 않은 데 “특별한 이유는 없다”고 해명했지만 이 문제가 관심 밖으로 밀려난 결과라는 점은 분명하다. 조현동 주미대사는 작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미국 내에서 북한 비핵화 회의론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대선 전 트럼프 캠프는 북한 비핵화 목표가 현실적이라고 판단해 북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는 대가로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도 차기 트럼프 정부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대화를 통해 핵동결이나 군축 협상으로 ‘스몰딜’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난 13일 국회에 보고했다.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핵무기 일부 폐기, 핵능력 시설 일부 폐쇄 등 북한 핵능력을 인정하고 몇몇 능력만 줄이거나 차단하는 핵군축 담판 협상으로 이어진다. 우리 대북정책도 크게 바뀔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헤그세스 후보자 발언이 지난해부터 워싱턴 조야에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자는 주장이 잇따르는 가운데 나온 만큼 단순 해프닝으로 치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두진호 한국국방연구원(KIDA) 한반도안보연구실 연구위원은 “미국은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라며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과 북한 핵군축 협상을 통해 노벨평화상을 받는 일에 더 관심이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 “인·태 미군 태세 재점검해야”
헤그세스 후보자는 이날 청문회에서 대중국 대응 능력을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억지력을 재확립하겠다”며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공산당이 이끄는 중국의 공세를 억지하기 위해 파트너 및 동맹국과 함께 일하겠다”고 말했다.


또 “인·태 지역 등 전 세계에 배치된 미군 태세를 재점검해야 한다”고 밝혔다. 주한미군 규모와 성격도 이에 따라 바뀔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주한미군이 꼭 줄어드는 방향이 아닐 수 있으며 육군 중심(약 70%)에서 해군력이나 공군력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갈 것이란 견해도 나온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김동현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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