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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中 '농축우라늄 무기화'…수출 중단땐 韓원전 절반 '올스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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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통상자원부의 원자력 담당 실무자들은 지난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원자력장관회의 참석차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을 때 프랑스 핵연료 기업인 오라노, 프로마톰 관계자들을 만났다. 양측은 회의에서 우라늄 정광 생산부터 변환, 농축에 이르는 핵연료 공급망 전반의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달 한국수력원자력은 미국 핵연료 기업 센트러스에너지에서 2031년부터 저농축 우라늄을 장기 공급받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요 조건 합의서를 체결했다. 현재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4개국으로 국한해 들여오는 농축 우라늄 수입원을 미국으로 다변화하려는 시도다.

원자력 발전 연료인 농축 우라늄이 신냉전 시대의 새로운 ‘뇌관’으로 부상하면서 정부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미국 정부가 2028년부터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예고하자 러시아가 수출 제한에 나서는 등 핵연료 공급망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한국은 농축 우라늄 자체 생산이 불가능하고, 수입의 40%를 러시아·중국에 의존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정부도 러시아·중국 의존도 줄이기에 나섰다. 수입처를 우방국 중심으로 다변화하고 러시아와 중국의 가격 공세에 취약한 현행 최저가 입찰 제도를 개편한다는 방침이다.

농축우라늄 수입, 러·중에 40% 의존
25일 원자력업계에 따르면 산업부는 최저가 입찰만 가능한 한수원의 농축 우라늄 수입 계약 방식을 수의계약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한수원이 담당하는 한국의 원전 관련 조달 계약은 일반적인 공공 입찰에서 활용하는 최저가 입찰 방식이다. 정부는 농축 우라늄 등 핵연료 수입에는 예외를 인정해 최저가가 아니더라도 공급망 안정성과 안보 측면의 의미가 있는 사업자에게 수입하는 방안을 허용할 계획이다.

산업부가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하는 것은 원전이 인공지능(AI) 기술 등으로 폭증하는 전력 수요의 대안으로 떠오른 가운데 1970년 발효된 핵확산방지조약(NPT)에 따라 공급이 제한된 농축 우라늄이 상대 진영을 압박하는 전략 무기화하고 있어서다.

핵연료의 ‘원석’인 천연 우라늄은 고갈을 걱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풍부하다. 생산국은 20여 개국에 달한다. 러시아와 중국이 천연 우라늄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5%와 3% 수준에 불과하다. 하지만 천연 우라늄을 핵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농축 우라늄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등 소수의 열강만 생산할 수 있다. 농축 우라늄 시장은 러시아(로사톰) 44%, 영국(유렌코) 29%, 중국(CNNC) 14%, 프랑스(오라노) 12% 등 4개 기업이 생산량의 99%를 차지하는 과점 구조다.

국제 사회가 농축 우라늄 생산을 제한하는 것은 핵무기 연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우라늄은 천연 상태에서 0.711%인 ‘우라늄-235’ 농도를 농축을 통해 3% 이상으로 높여야 핵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가동 중인 원전엔 농도 3~5%의 저농축 우라늄(LEU)이, 소형모듈원전(SMR) 등 차세대 원전엔 5~20%의 고순도 저농축 우라늄(HALEU)이 필요하다. 핵폭탄엔 농도를 90% 이상으로 높인 고농축 우라늄(HEU)이 쓰인다.
냉전후 핵탄두 희석 ‘농축우라늄’
신냉전의 뇌관으로 부상한 농축 우라늄은 1990년대 냉전 종식을 계기로 러시아산 비중이 높아졌다. 1993년 미국과 러시아는 러시아의 핵탄두를 제거해 추출한 고농축 우라늄을 희석해 발전용인 저농축 우라늄으로 만드는 ‘메가톤(megaton)에서 메가와트(megawatt)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13년까지 20년간 2만여 개의 러시아 핵탄두가 해체됐고, 미국은 이렇게 만들어진 러시아산 저농축 우라늄을 수입했다. 이 과정에서 1985년 2730만 분리작업량(SWU)에 달한 미국의 우라늄 농축 규모는 현재 460만SWU로 줄었다. 같은 시기 러시아의 공급 능력은 300만SWU에서 2870만SWU로 증가했다. 그 결과 한때 세계 농축 우라늄 생산의 64%를 담당한 미국의 점유율은 10% 이하로 떨어졌다. 미국 내 92개 원전을 가동하는 데 쓰이는 핵연료의 35%가 러시아산이다.

미국 조 바이든 정부는 농축 우라늄의 러시아,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연료 공급망을 재건하고 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차세대 핵연료인 HALEU 공급망 구축에만 7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한수원과 공급 계약을 맺은 센트러스에너지의 농축 우라늄 생산이 시작되는 시점이 2028년이다. 미국이 러시아산 농축 우라늄 수입 중단을 예고한 시기다.
안보 이슈 반영하지 못 하는 최저가 입찰제
한국은 핵연료를 100%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러시아와 중국이 농축 우라늄 수출을 중단하면 원전 가동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한수원이 2019년부터 2023년까지 5년간 수입한 농축 우라늄 중 러시아산이 34%, 중국산은 5%에 달한다. 원자력업계는 2026년 중국산 농축 우라늄 비중이 30% 이상으로 높아져 전체 수입 중 러·중 의존도가 70%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와 중국이 농축 우라늄의 한국 수출을 중단하면 우리 원전의 절반 이상이 가동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부는 이런 우려를 최소화하기 위해 농축 우라늄 수입 계약 제도 개편을 검토하고 있다. 현행 최저가 입찰 제도에선 러시아 로사톰과 중국 CNNC가 우방국 기업인 유렌코(영국)와 오라노(프랑스)보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을 제시하면 한수원은 로사톰과 CNNC와 계약을 맺어야 한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자국 내 다수의 우라늄 광산을 보유한 러시아와 중국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영국과 프랑스 기업보다 월등하게 높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미·중 패권전쟁이 격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다양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발전하고 이상 기후에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러·중 리스크가 현실화했을 때 한국이 충분한 양의 농축 우라늄을 적절한 가격에 확보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며 “안보 관점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최저가 입찰제 개편은 물론 미국 등과 협의해 한국도 독자적으로 농축 우라늄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놔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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