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주도로 내년 3월 도입될 예정이던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 사업이 사실상 좌초 위기에 처했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반대하는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만 활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에 대비해 쏟아부은 예산 수천억원이 매몰비용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24일 정치권에 따르면 민주당은 AI 디지털 교과서를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올해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키기로 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23일 야당 의원들을 직접 찾아가 ‘도입 1년 유예안’을 절충안으로 제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년 3월 시행을 목표로 정책을 추진해온 교육부는 비상이 걸렸다. AI 디지털 교과서 도입을 위해 정부가 올해 투입한 예산만 1조2797억원이다. 세부적으로는 인프라 구축 8367억원, 교사 연수 비용 3818억원, 학습데이터 플랫폼 434억원 등이다. 인프라 구축을 제외하고 가장 규모가 큰 예산은 교사 연수 비용이다. AI 디지털 교과서를 활용해 학생 개개인에 대한 맞춤형 수업을 설계할 수 있도록 기획됐다. AI 교과서 도입이 무산되면 해당 연수 취지도 무색해진다.
연수 사업의 연속성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해당 예산은 교육부가 지난해 말 당시 김진표 국회의장을 설득해 교원의 디지털 역량 개선을 위한 특별교부금 형태로 편성받았다. 3년간 매년 약 5000억원의 예산이 편성되는데, 야당은 이 특별교부금을 전액 삭감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교과서를 만들고 검정까지 받은 발행사들이 법적 조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이 부총리가 야당 의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교과서 출판업체들로부터 1000억원대 소송을 당할 수 있다”고 토로한 배경이다. 교과서 지위가 사라지면 발행사들이 내야 하는 저작권료는 엄청나게 불어난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도 없어 구독료는 높게 책정될 수밖에 없다. 구독료가 높아지면 학교나 교실에서 이를 교육 자료로 채택할 때 부담이 커진다. 교과서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교육자료는 학교나 학부모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검정 과정까지 거쳐 만들어진 콘텐츠가 사장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한 교과서업체 관계자는 “수백억원을 투자한 발행사의 경우 법안 통과 여부에 회사의 명운이 걸려 있다”며 “좌초되면 소송을 통해서라도 투자금을 회수하려 할 것”이라고 했다.
고재연/강영연 기자 ye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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