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응에 일본은 원팀
트럼프가 재선한 지금 아베는 사망했고, 일본 총리는 아베의 ‘정적’이었던 이시바 시게루다. 아베의 맹우였던 아소는 일찌감치 이시바에게 등을 돌렸고, 모테기도 이시바가 넘어지기만 기다리고 있다. 트럼프 1기 때 일본의 파이프라인이 모두 사라진 셈이다. 일본 학계에선 이들이 이시바를 위해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구원투수로 등장한 인물은 아베의 부인 아키에다. 아키에는 이달 15일 미국 플로리다주로 날아가 트럼프와 부인 멜라니아 여사를 만났다. 양국 정부를 통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친분에 따른 만남이었다. 다음날 트럼프는 취임 전 이시바와의 회동 가능성에 대해 “그들(일본)이 원한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이시바에 퇴짜를 놨던 트럼프의 마음을 돌린 것은 남편의 정적을 도운 아키에였다는 게 일본 정계 평가다. 일본 야당도 힘을 합쳤다. 오구마 신지 입헌민주당 중의원은 18일 국회에서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에게 아키에와 트럼프의 만남을 살려 이시바와 트럼프의 만남으로 이어지도록 요구했다. 오구마 중의원은 일본의 초당파 의원 모임 중 하나인 ‘JICA(일본국제협력기구)의원연맹’ 소속이다. 이 연맹은 당파를 초월해 외교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않겠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곧장 트럼프 측과 일정 조율에 들어갔다.
대일 외교 문제 삼은 탄핵안
일본이 어렵사리 트럼프와 대화 물꼬를 트는 데 성공했지만, 남은 걱정은 더 크다. 한·일 관계 개선을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당장 한·일 정상외교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정치 혼란 국면에서 줄곧 “한·일 관계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며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협력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불안감을 숨기지 못하고 있다.불안의 기저에는 탄핵 심판이 끝나고 들어설 새 정권의 정책 기조에 대한 불확실성이 있다. 일본 정계는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작성된 1차 탄핵안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고집하며 일본에 경도된 인사를 정부 주요 직위에 임명하는 등 정책을 펼쳤다’는 내용 때문이다. 민주당 등은 논란이 커지자 2차 탄핵안에선 이 내용을 뺐지만, 이 와중에도 반일 감정을 정쟁에 활용하려는 한국 야당의 모습에 일본 정계는 혀를 내둘렀다.
일본에선 지난 4월 한국 총선 전 ‘모시민(もし民)’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혹시’라는 뜻의 일본어 ‘모시(もし)’에 민주당을 지칭하는 ‘민(民)’을 합친 말이다. 혹시 민주당이 승리하면 한·일 관계가 다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담긴 단어다. 최근엔 ‘모시명(明)’이 더 유행이다.
당보다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자질이다. 과거 한·일 관계를 개선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