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사가 가득했다. 한강과 황석영 등 한국 작가들이 세계에서 주목받았고, 출판 시장은 상시 불황이라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책을 찾았다. 서울국제도서전에 사람이 몰리고 Z세대 사이에선 책 읽는 모습을 자랑하는 텍스트힙이 유행했다. 전 연령층에 걸쳐 필사 열풍이 불고 한국 소설이 잇달아 영상화됐다. 출판계에 희망이 싹튼 한 해였다.
1. 한강, 아시아 여성 첫 노벨문학상소설가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아시아 여성 작가로도 처음이었다. ‘한강 열풍’이 불며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대표작들이 수상 발표 5일 만에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인쇄소는 밤새워 책을 찍어내야 했다.
2. 독서는 멋진 일 ‘텍스트힙’ 유행20대인 Z세대에 ‘읽는 것은 멋지다’는 텍스트힙이 유행했다. 이들은 소셜미디어에 책 읽는 모습, 책 표지, 책 속 문장 등을 찍어 올린다. 과시용 독서라는 힐난도 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출판계도 반색했다. 문학동네가 카프카 100주기를 맞아 홍익대에 단 3일 연 팝업스토어 카페 ‘뮤지엄 카프카’엔 600여 명이 몰려 상품이 일찍 동나기도 했다.
3. 스마트폰 시대에 ‘필사책’ 열풍책 속 문장을 손으로 쓰는 필사가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마음의 안정을 찾고 문해력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텍스트힙과도 맞물렸다.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 <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상반기에만 100여 종의 필사책이 출간됐다.
4. 쇼펜하우어·니체 등 철학서 인기새해 벽두부터 쇼펜하우어 바람이 불었다.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는 7개월 가까이 베스트셀러 20위권에 머물렀다. 쇼펜하우어를 다룬 신간은 지난해 15종에서 51종으로 대폭 늘었다. <초역 부처의 말> 같은 불교 서적, 철학자 니체의 사상을 쉽게 풀어낸 <혼자일 수 없다면 나아갈 수 없다> 등도 주목받았다. 고된 현실 속에 위로와 통찰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5. 스크린 사로잡은 한국 소설들한국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잇달아 극장에 걸렸다. 장강명 소설 <한국이 싫어서>, 박상영의 <대도시의 사랑법>, 김혜진의 <딸에 대하여> 등이다.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는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으로 공개됐다. 영상화 가능한 매력적인 이야기가 한국 문학에서 많이 생산되고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정세랑 장편 <시선으로부터>, 김초엽 단편 ‘스펙트럼’도 영상화에 들어갔다.
6. 국내 서점가 휩쓴 클레어 키건지난해 아일랜드 소설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국내 출간됐을 때 열렬한 반응은 없었다. 출판사 다산책방조차 잘 팔릴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추천한 후 인기가 치솟으며 서점가를 휩쓸었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 독자들이 2024년 ‘올해의 책’ 1위로 꼽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최근 킬리언 머피 주연의 영화로 개봉하며 다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7. 김애란 작가, 13년 만의 장편소설김애란은 ‘젊은 거장’으로 통한다. 단편을 통해 탁월한 문장과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런 그가 13년 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펴내자 이목이 쏠렸다. 출간 즉시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성장’에 관한 이야기로 김애란은 “성장이란 시점 바꾸기가 아닐까 싶다”고 했다.
8. 황석영, 국제부커상 최종 후보황석영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가 국제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한국 작가 책이 최종 후보에 오른 것은 벌써 다섯 번째. 2016년 한강이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이 상을 받았고, 정보라의 <저주토끼>, 천명관의 <고래> 등이 최종 후보에 올랐다.
9. 서울국제도서전 성공적 홀로서기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의 다툼 속에 국내 최대 책 축제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정부 지원 없이 열렸다. 흥행은 대성공이었다. 출협에 따르면 지난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5일 동안 열린 도서전에 15만 명이 찾아 지난해 13만 명보다 2만 명 늘었다. 20~30대가 많이 찾은 것이 흥행을 도왔다.
10. ‘책 만들 때 세액공제’ 논의 급물살출판계에서 영화처럼 세액공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책 제작비 중 일정 비율을 출판사가 납부하는 법인세나 소득세에서 공제하는 제도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등 한국 출판계가 세계 무대에서 성과를 내면서 탄력을 받았다. 관련 법안이 발의돼 국회 본회의 상정을 앞두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