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립발레단 ‘호두까기 인형’ 캐스팅엔 깜짝 발탁이 있었다. 주인공 마리 역할에 코르 드 발레(군무) 등급인 발레리나가 포함된 것. 총 7쌍의 마리와 왕자가 무대에 서는데, 21세의 발레리나 김별은 이 중 최연소로 마리 역할을 맡았다.
지난 4일 강원 강릉아트센터에서 신고식을 치른 그는 오는 15일과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다. ‘엑스’자 다리와 작은 얼굴, 크고 뚜렷한 이목구비 등 발레리나로서의 타고난 신체 조건을 갖추고 있는 그는 일찍부터 발레단에서 주목받아 왔다. 군무에 숨겨놔도 튀는 마스크 덕에 김별은 그의 이름처럼 언제나 별처럼 반짝이며 빛났다.
11일 서울 서초동 국립발레단 연습동에서 리허설을 마치고 나온 그는 “2021년 발레단에 준단원으로 들어와서 이듬해 정단원 시험을 볼 때 선택한 작품이 ‘호두까기 인형’ 2막 솔로 배리에이션이었다”며 “국립발레단에서 마리를 꼭 하고 싶었는데, 그 소원이 빨리 이뤄져 너무 기쁘다”고 했다.
그의 호두까기 인형 경험은 어린 시절 프리츠(여주인공의 남동생) 친구, 입단 이후엔 ‘눈송이 춤’ ‘꽃의 왈츠’ 등 군무가 전부다. 신나고 흥겨운 분위기의 ‘호두까기 인형’은 다른 고전 발레 레퍼토리와 비교했을 때 저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오히려 더 어려운 작품”이라고 고개를 저었다.
“다리를 벌리고 원을 그리듯이 도약하는 ‘마네주’라는 게 있어요. 주로 발레리노가 하는 동작인데 호두까기 인형에서는 마리가 이 동작을 해요. 점프도 많고, 그 외 도전적인 동작과 역량을 요구해서 결코 쉽지 않은 작품입니다.”
마리로 캐스팅된 발레리나 가운데 가장 마리와 가까운 어린 나이여서 부담감이 덜 했을 것이란 추측은 오해였다. 그는 자신의 성숙한 외모와 우아한 춤이 오히려 1막의 ‘어린 마리’를 표현하기에 힘든 요소였다고 했다.
“꿈나라 이야기가 지속 전개되는 거고 마리도 순수함 그 자체로 표현돼야 해요. 그 점을 잘 부각하기 위해 파트너(솔리스트 하지석)와 계속 대화하면서 마리라는 인물을 열심히 배우고 있어요.”
예원학교를 졸업한 그는 서울예고에 진학하지 않고 홈스쿨링을 하며 발레에만 집중했다. 다른 취미도 없을 정도로 오직 발레만 아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다.
“발등을 둥글게 만들어주는 스틱이 있어요. 발끝으로 서야 하는 발레리나에게는 둥그렇고 유연한 발등이 필수거든요. 발에 스틱을 끼운 채 ‘내일은 발등이 더 둥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잠들기도 했어요(웃음).”
2024년은 그에게 감사한 기회가 많은 한 해였다. 서울 무대에서는 주역으로 서는 게 이번이 처음이지만, 이미 그는 ‘돈키호테’의 지방 공연에서 키트리와 메르세데스로 주역을 경험했다. 또 ‘백조의 호수’에서 러시아 공주라는 비중 있는 배역을, 국립발레단이 올해 처음 무대에 선보인 ‘인어공주’(존 노이마이어 안무)에서는 인어공주 역의 언더스터디를 맡았다. “처음 마리로 서는 사람이다 보니 관객들에게 신선함을 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아하고 표현력이 풍성한 마리를 꼭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국립발레단의 ‘호두까기 인형’ 서울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이어진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