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있었던 게엄에 대해 학생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12일 경기교사노조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다음 날인 4일 아침 경기남부 A 학교 교장은 교사들을 대상으로 학생들에 대한 계엄 교육을 시키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런 내용이 경기교사노조에 알려져 노조가 조사한 결과 이 조치는 경기교육청, 교육지원청이 아닌 해당 교장 개인의 판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많은 학교의 분위기가 비슷해 교사가 학생에게 계엄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는 “교사는 정치적 금치산자로 표현의 자유를 제약받았을 뿐만 아니라 교사로서의 책무 역시 달성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비판 성명을 내기도 했다.
계엄 이후 일선 학교에선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계엄이 무엇인지를 묻고, 평가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나 교사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난감할 때가 많다. 서울지역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 B씨는 "남자 아이가 대통령은 나쁜 사람이니깐 총살해야한다는 말을 하길래, 잘 타일렀지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교사가 정치에 대한 교육을 꺼리는 건 학부모 민원 탓도 크다는 설명이다. 한 서울 지역 초등 교사 C씨는 “정치 이슈에 대해 교사생활을 하면서 학부모 민원을 너무 많이 받았고, 어느새 정치와 관련해선 학생들에게 입을 다물게 됐다”고 털어놨다.
이때문에 교육현장에선 교육 기본 목적 중 하나인 ‘민주시민 양성’이 간과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C씨는 “학부모가 원하는 교육과 교사의 정치적 성향, 학생의 성향이 제각각이어도 다른 의견끼리 부딪히고 토론하는 것 자체가 교육인데, 현장에서 계엄에 관한 이야기를 아예 피하다 보니 어린 학생들일 수록 무슨 일인지 궁금해만 하고 있는 상황”고 전했다.
건전한 공론화 교육을 받지 못하다보니 학생들이 극우, 극좌 콘텐츠를 쉽게 접하게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고 필요함에도 이에 대한 교육이 부족해 인터넷을 통해 한쪽으로 편향된 의견을 접하기 쉬워졌다는 것이다. 경기교사노조 관계자느는 "고등학교에 일베 등 극우 커뮤니티를 이용하는 친구들이 많아진 것도 학교의 정치 교육이 미비한 탓"이라고 했다.
이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한 현장 교사가 직접 계엄 관련 수업자료를 만들어 전국역사교사모임 누리집을 통해 배포하기도 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관계자는 “정치적인 성향이 들어가지 않은 교육 자료”라며 “여느 때보다도 역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은 시점에서 제대로 된 역사 교육을 하기 위해 제작됐다”고 설명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는 “학교에서는 학교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특정 기념일, 역사적 사건 등 시사적인 의미를 가진 주제 교육인 ‘계기 교육’도 이뤄져야 한다”며 “계엄 사태는 계기 교육 형태로 활용하기 좋은 사례로, 한 쪽의 입장이 아닌 사실 그대로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스스로 생각하고 토론해볼 수 있도록 교육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혜인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