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12월 19일 20:3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교보생명을 둘러싼 2차 중재 판결이 투자자인 어피니티 컨소시엄에 유리하게 나오면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조 단위에 이르는 풋옵션 대금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1차 중재에선 풋옵션의 유효성은 인정을 받았지만 신 회장 측이 행사가격을 정할 의무가 없다는 주장을 펴며 절반의 승리에 그쳤다. 2차 중재에선 가격을 정하는 방식까지 국제상업회의소(ICC)가 정해주면서 신 회장이 더 이상 풋옵션을 이행하지 않을 방법이 없어졌다.
신 회장, 즉시 가격 산정 절차 밟아야
19일 ICC가 내놓은 2차 중재안에 따르면 신 회장은 즉시 외부기관 한 곳을 지정해 풋옵션 가격을 산정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이날부터 공휴일을 포함 30일 내 신 회장이 ICC의 중재안을 이행하지 않으면 일종의 벌금인 간접 강제금이 부과된다. 간접 강제금은 하루에 20만달러(약 2억9000만원)에 달한다. 신 회장이 중재 불복 신청을 제기하더라도 간접 강제금이 면제되진 않는다.1차 중재판정과 달리 강제성이 부여된만큼 신 회장이 풋옵션 가격 산정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행사 가격의 차이는 여전히 클 것으로 전망된다. FI들이 제시한 풋옵션 가격인 40만9000원은 행사시점인 2018년 10월 교보생명 주가순자산비율(PBR)의 0.7배 수준으로 알려졌다. 교보생명 측은 "신 의장의 감정평가기관 선임 결정은 2018년 행사 당시 풋옵션 가격을 다시 산정하자는 것"이라며 "이는 어피니티가 요구했던 40만9000원이 아닌 기존보다 대폭 낮아진 수준에서 풋옵션 가격이 정해질 가능성이 높아진 결정"이라고 해석했다. 신 회장이 원하는 수준은 어피니티 측이 매입한 가격인 주당 24만5000원 안팎으로 알려졌다. 풋옵션 가격에 따라 신 회장 지급해야 하는 금액은 1조원 안팎의 차이가 난다.
신 회장이 선정한 외부기관이 제시한 풋옵션 가격과 FI들이 제시했던 주당 40만9000원과 10% 이상 차이가 나면 제3의 외부 평가기관이 가격을 다시 평가하게 된다. 제3의 외부 평가기관 선정은 안진이 세 곳을 추천하고 신 회장이 이 중에서 한 곳을 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신 회장이 선택을 거부하면 안진이 외부 평가기관을 선정할 수 있다. 신 회장이 더 이상 풋옵션 가격 산정 절차를 이행하지 않는 방식으로 풋옵션 의무를 회피하긴 어렵다는 얘기다.
풋옵션 자금 마련책 찾는 신 회장
중재 결과를 받아든 어피니티 측은 즉각 법원에 집행 신청을 할 예정이다. 중재 판정은 그 자체로 법원 판결과 같은 효력이 있지만 집행력을 가지려면 국내 법원으로부터 해당 결과에 대한 승인과 집행 허가를 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국내 법원이 국제 중재 결과를 대체로 존중하기 때문에 집행 허가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어피니티 측이 신 회장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됐다. 어피니티 측은 신 회장이 풋옵션을 받아주지 않아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해 어피니티 측이 입은 기회 손실에 대한 배상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행강제금과 별개로 풋옵션 가격 산정 절차가 마무리되면 연 6%대 지연 이자도 붙기 시작한다. 가격 산정 절차는 늦어도 내년 3월이면 마무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신 회장 입장에선 1년에 700억원이 넘는 지연 이자를 감안하면 하루 빨리 풋옵션을 받아주기 위한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 신 회장은 이미 물밑에서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을 만나 본인 지분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풋옵션 행사 자금을 마련하는 방안을 문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으로 정해질 풋옵션 가격에 따라 다르겠지만 신 회장 본인 지분만으로는 풋옵션 자금을 마련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신 회장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어피니티 측을 내보내고 FI를 교체하는 방안이 있다. 보다 유력한 안은 담보 대출을 받는 것이다. 본인 지분과 재무적투자자(FI) 지분을 합쳐 특수목적법인(SPC)에 넘기고 이 법인이 보유한 교보생명 지분 약 60~70%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방법이다. 대출 받은 자금으로 어피니티 측 지분을 사들이고, 이후 교보생명을 상장하는 과정에서 구주 일부를 팔아 담보 대출을 갚으면 풋옵션을 받아주면서도 경영권을 유지할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결국 풋옵션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에 따라 신 회장이 어떤 방법으로 FI 지분 24%를 되사올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종관 / 차준호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