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불확실성이 언제까지 지속될지가 내년 한국 경제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국내 경제학자들이 계엄 선포와 탄핵 정국이 한국 경제에 미칠 영향에 관해 내린 진단이다. 탄핵 정국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자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처음엔 해프닝으로만 여기던 해외 투자자도 이번 사태를 예의 주시 중이다. 경제학자들은 윤석열 대통령 거취 등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동안 경제팀 주도로 외환·금융시장 안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제팀 충분히 위기 극복 가능”
이윤수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탄핵이든 조기 퇴진이든 대통령이 사실상 공석인 현 상황부터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밝혔다. 그는 “외환·금융정책은 다행히 정부가 정치권 입김 없이 독자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다”며 “경제팀이 금융감독 시스템 등을 활용해 대외 신인도를 확고히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외 신인도를 관리하는 데 정책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대외 신인도 변화에 따라 물가와 경제 심리가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인터뷰에 응한 대부분 경제학자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 ‘경제 투톱’의 역량이라면 시장을 충분히 안정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승헌 숭실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국내 기업과 가계도 혼란스럽겠지만 무엇보다 외국인 투자자가 동요하고 있다”며 “이들이 경제팀의 정책 역량을 안심하고 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도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긴 했지만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며 “경제팀의 최우선 과제를 외환시장 안정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팀이 위기에 빠진 국내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지속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윤수 교수는 “저성장을 타개할 돌파구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산업”이라며 “비상시국이라고 해도 반도체·AI산업 지원 대책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조장옥 서강대 명예교수는 “조선·석유화학 등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은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로운 정책을 내놓기보다 현 경제 상황을 유지·관리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고영우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손발이 묶인 지금 상황에서 경제팀에 새로운 정책을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금융·외환시장을 문제없이 관리·유지하는 게 최선”이라고 밝혔다. 다만 경제학자들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현 경제팀이 대응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았다. 대통령이 사실상 공석인 상황에서 경제팀이 경제·산업 전략뿐 아니라 외교·안보 전략까지 준비하는 건 어렵다는 설명이다.
“내수 진작 대책 서둘러야”
경제학자들은 현 사태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작지만 단기적으로 경제 충격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소비 침체에 따라 내수 부진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지난달 말 수정 경제전망에서 내년 성장률을 2.1%에서 1.9%로 내렸다. 이번 탄핵 정국 여파는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7%로 낮췄다.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내수 부진으로 자영업자들이 어려운 상황에 몰렸다”며 “통화·재정정책을 동원하는 등 경기를 부양하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윤정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도 “현 경제팀이 당면한 최우선 과제는 소비 위축을 막기 위한 내수 진작”이라고 강조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져 내년에도 내수 침체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한은이 제시한 내년 성장률 1.9%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 교수는 내수 부양을 위해 한은이 내년 1월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경민/이광식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