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다사다난했던 2024년 갑진년(甲辰年)이 저물어가면서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2025년 을사년(乙巳年) 재테크 전망을 점치기 바쁩니다. 내수 부진 속 맞닥뜨린 탄핵 정국, 고환율 등 악재와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 불확실성 요인이 도사리고 있는 시점입니다. 한경닷컴은 다양한 업종의 주식과 채권, 원자재 등 전문가에게 새해 투자전략을 물었습니다.
올해 미국 증시에서 우량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꾸준히 오름세를 나타내 약 24% 올랐다. 높은 평가가치(밸류에이션) 부담에도 기업들 실적이 순항한 영향이다.
23일 내년 글로벌 증시도 '미국의 해'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국내 증권사의 전망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낙관론 입장에서는 "감세·규제 완화를 강조한 도널드 트럼프 미 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만큼 이를 계기로 미국만 잘 나가는 '예외주의' 현상이 더 강해질 것"이라고 본다.
반면 "미국은 가고 중국의 시대가 왔다"는 정반대 의견도 있다. 내년 상반기 미국이 밸류에이션 부담을 해소하는 동안 중국이 '강한 부양책'으로 치고 올라갈 것이라는 얘기다.
이재만 "내년에도 美증시만 군계일학"
이재만 하나증권 글로벌투자분석실장은 내년에도 미국 증시가 주도주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미국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여전히 높은 가운데, 앞으로의 환경도 미국 증시의 이익 추정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조성될 것이란 의견이다. 여기서 우호적인 환경이란 거시경제(매크로) 측면에선 '미 중앙은행(Fed) 기준금리 인하'를, 정책적으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 정책으로 인한 미국 제조업·가계 체감경기 개선 가능성'을 가리켰다.이 실장은 "역사적으로 보면 미국 증시 밸류에이션 급락은 금리 상승이라는 일반적인 경기현상보단, 금융위기나 관세전쟁, 펜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등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발생했다"며 "이런 이례적 밸류에이션 충격을 제외하면 지수 수익률에는 이익증가율의 기여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장기적으로 주가는 이익 기반으로 상승했다는 얘기다.
미국 증시는 기업 이익이 계속 느는 추세다. 당장 우리나라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이달 초 기준 코스피지수의 12개월 예상 영업이익은 310조원으로 지난 8월을 정점으로 꾸준한 하락세다. 반면 미국 S&P500지수의 12개월 예상 순이익은 2조2700억달러로 지난 8~9월 일시적 감소분을 빼면 사상최고치를 계속 경신하고 있다. 지난 한 주는 Fed의 금리인하 속도조절론에 뉴욕증시가 주춤했지만 시장에선 연말연초 '산타랠리'에 대한 기대감이 여전하다.
이 실장은 "매크로와 정책적 상황이 맞물려 미국 제조업과 가계의 체감 경기가 계속해서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 실장은 특히 미 산업재 섹터에 주목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계기로 국가 간 의존을 줄이는 '탈세계화'와 해외로 나간 기업 생산기지를 다시 자국으로 되돌리는 '리쇼어링'(Reshoring) 등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그는 "S&P500 산업재 섹터의 매출액은 사상 최고 수준이지만, 매출액 대비 시설투자(CAPEX) 비율은 4.4%로 2022년 이후 최저치"라며 "그간 투자가 위축됐던 산업재 섹터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이 실장은 "내년에도 S&P500 주요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이 18~20%로 높은 성장률과 수익성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에 압도돼 다른 나라가 크게 눈에 띄지 않는 올해의 상황이 또 한 차례 거듭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상희 "미국보다 중국…신흥국 우위 전망"
반면 한상희 한화투자증권 글로벌리서치팀장은 내년에는 중국을 위시한 '신흥국 우위' 흐름이 나타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부양책에 거는 기대 때문이다. 먼저 이달 11~12일 열린 중요 회의인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 중국이 어떤 강력한 부양책을 내놓을지가 시장의 관심사였다. 해마다 12월 중하순 열리는 중앙경제공작회의는 다음해의 경제성장 목표를 논의하는 자리로, 정부 정책 기조를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회의에서 정부는 '안정'에서 '성장'으로 경제정책 운영 기조를 틀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주재한 이번 공작회의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과 완화적인 통화정책이 제시됐다.
이제 관심은 내년 3월 열릴 중국 최대 연례 정치행사 '양회'로 옮겨졌다. 대형 행사들이 연이어 열리는 만큼, 부양책 기대감을 계속해서 이끌어 가고, 확장시킬 수 있다는 게 한 팀장의 설명이다.
한 팀장은 "이달 중앙경제공작회의에서는 지난해보다 더 적극적인 표현으로 시장심리를 자극했다"며 "내년 3월 양회에서는 또 한 번 '5% 전후'의 경제성장 목표가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5%를 밑도는 목표는 성장을 추진하겠단 정부 의지에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환골탈태'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감행할 수밖에 없는 때라고 강조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앞선 2020년 '2035년까지 국내총생산(GDP)과 1인당 GDP를 2020년의 두 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를 달성하려면 15년간 최소 연평균 4.7%의 성장세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경제 성장률이 둔화하는 지금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사실상 목표 달성은 불가능하다. 중국 정부의 '과감하고 확실한' 조치가 예상되는 이유다.
한 팀장은 "경제 회복에 따라 주당순이익(EPS) 상향이 기대된다"면서 중국을 최선호주로 꼽았다. 차선호주로는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 비미국 선진국, 특히 한국과 대만, 유럽을 권했다. 역사적으로 중국과의 상관관계가 높다는 분석이다. 반면 중국과 상관관계가 낮은 미국과 인도에 대해선 상대적 열위를 점쳤다.
그는 "나스닥의 주도력은 이미 올해부터 약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 세계적 폭락장세가 펼쳐지면 미국에서만 돈이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돈이 모조리 채권이나 금으로 옮겨가겠지만, 우리가 가정하는 시나리오는 실적과 이익 등으로 인한 단순 조정 국면"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에는 미국 증시의 돈이 다른 국가로 빠져나가 신흥국들이 수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국의 강한 부양책은 '트리거'(방아쇠) 역할이다.
한 팀장은 "중국 경제의 모멘텀(동력)이 살아있는 내년 상반기까지는 나스닥 기업들 대비 중국 증시의 수익률이 상대적으로 더 양호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