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윙 데이즈 : 암호명 A'이 한국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 웰메이드 창작 뮤지컬의 탄생을 알렸다.
26일 오후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에서 '스윙데이즈 : 암호명 A' 프레스콜이 진행됐다. 현장에는 김희재 작가, 정경진 프로듀서, 박해림 각색·작사, 김태형 연출, 김문정 음악감독, 이현정 안무감독을 비롯해 배우 유준상, 신성록, 민우혁, 고훈정, 이창용, 김건우, 정상훈, 김승용, 전나영, 이아름솔 등이 참석했다.
'스윙 데이즈 : 암호명 A'는 독립운동가로서의 결정적인 선택을 한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일제 치하였던 1945년 대한민국 자주독립을 위해 OSS(미국 CIA 전신)가 비밀리에 준비한 냅코 프로젝트에 참여한 한국인 19명 중 한 명이었던 유일한 박사의 일대기를 바탕으로 창작된 국내 초연작이다.
'실미도'로 천만 영화 관객 시대를 연 김희재 작가가 처음으로 집필한 뮤지컬 작품으로, 음악은 그래미 어워즈와 에미상 수상은 물론 '데스노트', '웃는 남자' 등의 흥행 뮤지컬 편곡으로 친숙한 제이슨 하울랜드가 작곡했다. 3년여에 걸친 프리 프로덕션 작업을 거쳐 지난 19일 드디어 개막했다.
김희재 작가는 "우리도 그 시대에 태어나면 누구나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너무 어려운 일이다. 당위성을 갖는 독립운동이 아니라 생을 걸고 여러 생각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고 밝혔다.
이어 "하루에도 수십 번의 선택을 하는데 그 가운데에는 빅딜도 있고, 작은 선택도 있다. 우리 다음 세대가 더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갈 때 어떻게 고민하고, 내 앞의 상황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화두로 이 작품을 받아들여 줬으면 한다"고 부연했다.
실존 인물을 뮤지컬화 한다는 점에서 조심스러울 법도 하지만, 김 작가는 유일한 박사의 서사에 강한 끌림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냅코 프로젝트를 알게 됐을 때 '이건 드라마가 세다'고 생각했다. 유일한 박사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왜 그랬을까, 그리고 미완의 프로젝트라는 점과 유일한 박사가 이걸 알리지 않고 돌아가셨다는 점 등 팔수록 보화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털어놨다.
주 분야인 영화가 아닌 뮤지컬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수년간 더 많은 분과 이 이야기를 공유하고 싶었다. 뮤지컬은 여러 세대를 거쳐 공유되고, 오래 회자되고, 음악이 많은 사람에게 퍼져나가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어려운 소재인데 뮤지컬 선배님들께서 잘 도와주셔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김태형 연출은 "일본 강점기의 이야기를 다루는 문화 콘텐츠가 한국에서 끊이지 않고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최근 트렌드는 신구 문화가 섞인다는 거다. 국가적인 아픔도 있고, 독립운동한 분들의 희생에 따른 아픔과 고통도 있지만 요즘은 그 안에서 로맨스나 판타지가 펼쳐지기도 하고, 귀신·요괴·SF 등 새로운 요소와 만나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유일형(유일한 박사를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의 이야기는 쿨하고 멋진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류 세력이 아닌 소수로서 저항하고 스스로 이겨내는 이야기가 아프고 숭고하고 희생정신으로 전달되어선 안 된다. 굉장히 쿨하고 섹시하고 유머러스하고 위트 있는 이야기, 그런데도 진심을 다하는 이야기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싶었다"고 생각을 밝혔다.
그러면서 "옳은 가치를 위해 행동하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이었는지를 보여주자면서 돈도 많이 쓰고, 무대도 멋지게 하려고 했고, 일형이 의상도 엄청나게 갈아입혔다"며 웃었다.
제이슨 하울랜드가 작업한 음악은 이미 호평을 얻고 있다. 김문정 음악감독은 "미국인 작곡가가 '잘 표현할 수 있을까'라는 개인적인 우려가 있었다"면서도 "그 시대의 독립운동이 무겁고 비장하고 침울하게 다가가는 게 아니라 댄디하고 섹시하고 쿨하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쉽고 편한 음악의 매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들과 처음 연습했을 때 모두 입을 모아 음악이 너무 좋다"면서 "제이슨은 10년 동안 한국 사람들과 작업해 와서 특성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음악도 잘 알고, 배우들에게 특화된 매력적인 멜로디를 줬다"고 만족스러움을 표했다.
존경받는 기업인이자 독립운동을 후원하던 사업가에서 직접 독립운동에 뛰어드는 유일형 역은 유준상, 신성록, 민우혁이 맡았다.
민우혁은 "전 세계에 통용되는 단어가 사랑이지 않냐. 작품의 마지막에 나오는 '내 목숨을 다 바쳐서 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겠습니다'라는 대사가 나를 다 설득해줬다"면서 "한국에서 창작된 작품이기도 하고,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전 세계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신성록은 앞서 창작진들이 언급한 '무겁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언급했다. 그는 "대본을 받았을 때 위트가 허락되는 느낌이었다. 작품을 끝날 때 보면 많이 웃다가 운 느낌이다.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그때 분들도 그렇지 않았나 싶었다"고 털어놨다.
일본인 장교 아버지와 조선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일본인 중좌 야스오 역은 고훈정, 이창용, 김건우가 연기한다.
고훈정은 야스오에 대해 "끝까지 정체성을 정하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인물"이라면서 "솔로 넘버가 하나 있는데 클라이맥스 때 나오는 연주가 '너 정체성 뭐야!'라고 소리치는 거 같다. 그 압박을 받으면서 '그게 뭘까요!'라고 말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마지막 공연까지 달려가지 않을까 싶다"며 미소 지었다.
이창용도 "외롭고 딱한 인물"이라면서도 "그런데도 이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퍼즐의 한 조각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김건우는 "결핍이 있는 캐릭터다"라면서 "내가 느끼는 정체성은 한국이다. 배우마다 해석의 여지는 다르지 않냐"며 웃었다.
일형의 파티장에 숨어든 독립군 베로니카 역은 김려원, 전나영, 이아름솔이 소화하고, 일형의 소꿉친구이자 든든한 사업 파트너인 황만용 역은 정상훈, 김승용이 맡았다.
이아름솔은 "대한민국을 위해 힘써주신 선열들의 희생과 노력에 대해 미약하게나마 알릴 기회로 참여하는 이 순간이 내겐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라고 벅찬 소감을 전했다. 전나영은 "외국에서 자랐고 거기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성인이 되고 난 뒤 모국에 돌아와 무대에 서서 공연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게 엄청나게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 유일한 박사의 선택과 자신의 서사를 연결 지어 의미를 부여했다.
정상훈과 김승용은 "누군가는 독립을 위해 신념을 가지고 싸우겠지만 어떤 누군가는 사랑하는 친구 때문에, 친구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 길을 가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용을 시작해봤다. 일형이 만용에게는 조국 그 이상인 거다. 그런 인간적인 부분을 더 부각했다"면서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휴머니즘 가득한 인물로 표현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야스오의 아버지이자 조선에 새로 부임한 총독 곤도 역은 장현성, 성기윤이 소화한다.
장현성은 "여태껏 한 배역 중에 대놓고 나쁜 놈이다. 무대 나와서 처음 노래가 나오면 오케스트라가 '넌 대놓고 나쁜 놈이잖아'라고 얘기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면서 "이야기가 안정적으로 받침이 되려면 정의를 돋보이게 하는 악역의 블록이 단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개인적으로는 장현성이라는 배우가 뮤지컬에서 더 의미 있는 발전을 했으면 좋겠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성기윤은 "내 성격이랑 너무 다른 역할이라 힘들었다"면서도 "이 작품을 하면서 보는 분들의 생각이 반일이 아니라 반전으로 이어졌으면 했다"고 덧붙였다.
일형의 약혼녀인 중국계 미국인 의사 호메리는 최현주, 이지숙이 책임진다.
최현주는 "유한양행 하면 여러 좋은 약들을 많이 개발하고 있지만, 예전부터 유명하게 아는 건 안티푸라민이라는 연고다. 거기에 어떤 여성 얼굴이 그려져 있다. 그 얼굴이 난 호메리라고 알고 있다. 단지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을 약 표지에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호메리는 그릇이 큰 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강인한 호메리를 보여드리겠다"고 다짐했다.
이지숙 역시 "호메리 여사님은 그 시대에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었던 것 같다"며 "과연 나라면 남편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보내줄 수 있었을까 생각해봤다. 단단하고 너무 수동적이지 않고 적극적인 여성을 표현해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유준상은 작품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대한민국의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작품"이라면서 "'K-뮤지컬'의 시작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대단한 뮤지컬"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형 창작 뮤지컬 초연을 하는 게 이번이 10번째다. 6개 작품이 10년을 향해 갔다. 10년 뒤에 오늘과 같은 자리가 꼭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끝으로 정경진 프로듀서는 "젊은 친구들이 사랑하는 사람의 응원과 지지로 어떤 두려움 앞에서도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작품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면서 "다만 작품이 대진운이 안 좋다. '알라딘' 등 엄청난 작품들과 붙는데 우리의 이야기로 관객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스윙 데이즈 : 암호명 A'는 내년 2월 9일까지 충무아트센터에서 계속 공연된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