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3월 4일 새벽 3시 47분,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다세대 주택에서 방화로 인한 불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소방관 6명이 사망하고 3명이 큰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 환경과 처우가 알려지면서 국민의 공분이 커졌다.
영화 '소방관'은 홍제동 화재 참사 사건을 모티브로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구성한 작품이다. 화재 진압과 전원 구조라는 목표를 가지고 강렬한 화염 속에 뛰어드는 소방관의 이야기를 그렸다. 이 영화는 우리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모든 소방관'의 노고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25일 진행된 언론시사회에서 '소방관'의 연출을 맡은 곽경택 감독은 "실화가 모티브이기에 누군가의 희생을 기리는 만큼 치열함과 진지함으로 승부하자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곽 감독은 각색할 때부터 지금까지 머릿속에 '과연 소방관이 본인들의 이야기라고 인정할까'가 떠올랐다고. 이날 저녁 서울 경기 지역 소방관과 그 가족 1200명을 초청해 대규모 시사회를 열게 됐다.
곽 감독은 "오늘 저녁이 두근거리는 시간일 것 같다"며 "소방관들께서 '우리의 실제 현장과 비슷하다'는 말만 해주시면 제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곽 감독은 홍제동 사건 생존자를 작품 촬영에 앞서 만나기도 했다. 그는 "큰 트라우마가 되었을 기억을 들춰내지 못하겠고 여러 번에 걸쳐 밥을 먹었다. 유쾌하고 좋으신 분이다. 하루는 '감독님 저 이야기 안 해요'하시더라. 그래서 '안 하셔도 됩니다'했다"고 회상했다. 곽 감독은 구체적인 사건을 그리기보다 생존자들과 소방관의 정서를 영화에 녹였다고 강조했다.
영화는 주원, 곽도원, 유재명, 이유영, 김민재, 오대환, 이준혁, 장영남 등 연기파 배우들이 대거 출연했다.
주원은 서부소방서에 첫 발령 받은 신입 소방관 철웅 역을 맡았다. 그는 "감독께서 다른 기교보다 소방관들의 실제 환경과 노고, 일상을 깔끔하게 표현해 주신 것 같다"며 "촬영 당시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소방관에 대한 존경심이 점점 더 커졌다. 소방관뿐만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분이 공감하며 볼 수 있을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저는 불이 좀 어렵고 두려웠다. 연기가 너무 많아 안 보이는 상황이 실제로 있었다. 생각보다 뜨겁고, 살아있는 불을 보니 두려움이 컸다. 어려웠던 부분 중 하나"라고 털어놨다.
소방대원과 함께 화재 현장에 투입하는 구급대원 서희 역은 이유영이 맡았다. 이유영은 "사이렌 소리가 울릴 때마다 가슴이 철렁한다"며 "가족들과 소방관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안 된다. 존경스럽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디 이런 사고가 일어나질 않길 바라며 이런 영화에 출연할 수 있어서 자랑스럽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영화에는 2022년 음주운전으로 약식 명령받은 곽도원이 등장한다. 복귀작이라 할 수 있다. 앞서 제작보고회에서 그에 대한 아쉬운 마음을 토로했던 곽 감독은 "솔직히 말해서 곽도원 분량을 빼기 위한 편집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극 중 곽도원은 5년 연속 구조대상자 구출 횟수 전국 1등을 기록한 서부소방서 구조반장 진섭 역을 맡았다. 주원과 함께 극의 중심을 이끄는 주요한 인물이기에 그의 분량을 덜어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곽 감독은 "영화가 좀 늦게 개봉하면서 요즘 트렌드에 비해 속도감이 늦은 것 같아 동료들과 함께 젊은 세대도 재밌게 볼 수 있도록 스피드를 올리는 데 고민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의 고민은 영화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크랭크업한 지 꽤 된 영화지만 시류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보였다. 신파를 절제한 부분은 미덕 중 하나다.
곽 감독은 "실화고, 슬픈 이런 이야기는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희생을 기리는 것이 분명하지만 그것으로 관객에게 (관람을) 호소하는 것은 연출자로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방관들의 장례식 장면도 담담히 촬영됐다. 곽 감독은 "장례식 동영상을 많이 보면서 울기도 했는데, 장례식장에서 주인공 철웅이가 진섭의 대를 이어 멋있는 소방관으로 탄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래서 신을 건조하게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화재 현장 장면을 촬영할 때 배우들이 산소마스크를 착용하고 불 속으로 들어가면, 촬영팀은 마치 다큐멘터리 탐사팀처럼 연기 속에서 이들을 쫓았다. 위로 솟구치는 불길 때문에 자연스레 몸은 땅바닥에 붙을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
곽 감독은 "어떤 감독이든 다른 사람은 하지 않는 새로운 화면, 이야기를 해내는 게 임무라고 생각한다"며 "기존 소방관이 주인공인, 전설적인 영화도 보고 했는데 제가 현장의 가장 무서운 점은 '연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왜 다른 작품에서 연기를 표현 안 했는지 알겠더라. 표현하면 찍을 수가 없더라. 배우들 얼굴도 안 보인다. 연기에 대한 공포감을 살리기 위해 배우와 사물이 보일 정도의 연기를 매 컷 조절해 냈다. 그게 좀 딜레마였다"고 털어놨다.
곽 감독은 그러면서 "제일 힘들었지만,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하니까 다른 영화에 비해 표현한 것 같다고 생각해 봤다"고 강조했다.
서부소방서 구조대장 인기 역의 유재명은 이 영화의 관전포인트에 대해 "복잡한 대사, 시퀀스가 없고, 인물의 갈등이나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세계관도 아니다"며 "소방관을 영웅으로 묘사하기 위해 화려한 공법을 쓰지 않은 것이 놀라웠다"고 밝혔다.
아울러 "있는 그대로 잘 전달하고, 관객들이 받아 가시기를 바라는, 용기 있는 선택의 영역"이라며 "그 마음이 잘 전달되고 많이 공유되면서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소방관 효종 역의 오대환은 "아이에게 '아빠 이런 영화 찍었다'고 자랑할 수 있을 것 같다"며 "가장 큰 기쁨"이라며 웃었다. 이어 "그동안 이런 영화나 드라마가 없었다. 저도 감정 조절하기 힘들었다. 그걸 유념하시고 마음의 준비 단단히 하고 오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곽 감독은 "세상이 바뀌어서 저도 넷플릭스나 OTT 영화들을 본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이 많지 않았다"며 "오랜만에 조금 무겁긴 하지만 감정적인 '터칭'이 될 수 있는 신선한 경험을 하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소방관'은 오는 12월 4일 개봉된다.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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