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내각 지명자 중 첫 낙마 사례가 등장했다. 미성년자 성매수 등 성 비위 논란에 휘말린 맷 게이츠 법무장관 지명자(42·전 플로리다주 하원의원)은 21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X에 "내 (법무장관) 인준이 트럼프·밴스 정권 인수의 중요한 과업에 과도하게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이 글에서 "정치권의 실랑이를 오래 끌며 불필요하게 낭비할 시간이 없다"면서 "법무장관 고려 대상에서 내 이름을 철회하겠다. 트럼프의 법무부는 취임 첫날부터 자리잡고 준비되어야 한다"고 적었다.
게이츠 전 의원은 지난 13일 '깜짝 지명'됐다. 이때까지는 플로리다주의 하원의원이었지만, 내정 발표 이후 스스로 하원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가 의원 시절 성 매수와 마약 남용 등으로 하원 윤리위원회 조사를 받은 내용을 '전 의원 자료'로 전환해 외부 공표를 막으려 했다는 분석이 많다.
공화당 우위 상원, 게이츠 인준은 ‘NO’
지난 5일 선거에서 하원은 물론 상원까지 공화당이 우위를 점해 '레드 웨이브'가 달성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상원에 (상원 인준을 거치지 않고 내각을 임명할 수 있는) 휴회 인준을 요구하면서 충성서약을 강조했다. 하지만 상원 내에서는 이런 트럼프 당선인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게이츠 전 의원을 도저히 차기 법무장관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임기가 2년인 하원과 달리 상원은 6년 임기로 2년마다 3분의 1씩을 선출한다. 임기가 남은 의원들로서는 트럼프 당선인의 의견을 꼭 따라야 할 이유가 적은 셈이다. 일부 의원들이 직간접적으로 언론과 트럼프 캠프에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 100석 중 53석의 소폭 우세로는 인준이 불가능하다는 게 뚜렷해졌다.
CNN방송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오전 게이츠 전 의원에게 전화해 '상원에서 인준에 필요한 표를 확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CNN은 트럼프 당선인이 상원의원들과 나눈 대화를 근거로 이같이 판단했다고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트럼프는 이후 트루스소셜에 "그는 매우 잘 하고 있었지만, 동시에 행정부에 방해가 되고 싶지 않았다"며 게이츠의 사퇴를 수용하는 글을 남겼다.
이는 지난 13일 상원에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지지를 받아 온 릭 스콧 의원 대신 온건파 4선 존 슌 의원이 원내대표로 선출됐을 때부터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공화당 상원의원들은 대체로 트럼프 당선인을 지지하지만, 모든 사안에 대해 거수기 노릇을 할 생각이 없다. 게이츠 전 의원의 낙마로 분명해진 부분이다.
후임에 또 플로리다의 충성파
게이츠 전 의원의 후임자에는 다시 한 번 플로리다 파가 내정됐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트루스소셜에 20년 동안 검사로 재직한 팸 본디 전 플로리다주 법무장관(59)을 차기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본디 전 장관은 2010년 주 법무장관 선거에서 당선해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플로리다주의 첫 여성 법무장관으로 일했다. 특히 2012년 26개 주를 대표해 오바마 케어에 대한 위헌 소송을 내서 명성을 쌓았다.트럼프 집권 1기 때인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진행된 1차 탄핵 심판 때 사실상 트럼프 당선인의 개인변호사로서 활동했다. 탄핵심판 당시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 부자가 우크라이나 부패에 연루된 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으며, 2020년 대선 투표가 조작됐다는 주장을 옹호했다. 현재는 미국우선주의연구소(AFPI) 소송센터 의장을 맡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이번 대선 패배시 대규모 부정선거 소송을 준비하는 역할을 맡았을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에 따르면 본디 지명자는 법무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마약류 밀거래를 단속하고 펜타닐 남용에 따른 사망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너무 오랫동안 편파적인 법무부가 나와 다른 공화당원들에게 무기로 사용되어 왔다"며 본디 내정자가 "범죄와 싸우는 법무부의 목적을 되찾도록 하고 미국을 다시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또 "그녀는 아주 똑똑하고 강하며 미국 우선주의의 투사로서, 법무장관으로서 훌륭하게 해낼 것"이라고 밝혔다.
워싱턴=이상은 특파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