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16개 주요 기업 사장단의 이례적인 긴급성명이 어제 나왔다. 정치권을 향해 상법 개정을 비롯한 규제 입법을 중단하고 경제살리기 법안 처리에 힘써 달라는 호소가 주된 내용이다. 정부도 인공지능(AI), 반도체, 2차전지, 모빌리티, 바이오 분야 지원과 규제 개혁 골든타임을 놓쳐선 안 된다고 했다.
주요 기업 사장단이 긴급성명을 내놓은 것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으로 내수 침체를 겪던 2015년 7월 이후 9년 만이다. 쏟아지는 대내외 악재에 발 하나만 잘못 디뎌도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더 독해진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로 인한 주력 품목 수출 위축, 중국의 저가 공세에 따른 산업 위기, 내수 부진, 가계 부채 리스크 심화, 하향 곡선을 긋는 경제성장률 전망 등은 비단 기업인들만의 걱정은 아닐 것이다.
더 두려운 것은 우리 내부다. 성장동력을 살리기 위해 전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정부는 안이하고, 야당은 딴 세상에 있다. 상법 개정안만 하더라도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이사 충실 의무 대상 확대 등으로 소송 남발, 먹튀 조장을 부를 우려가 큰데 더불어민주당은 보호·공평 의무라는 독소 조항까지 넣겠다고 한다. 게다가 정부 여당은 소액주주 눈치를 보느라 일치된 대응 방안 없이 우왕좌왕해 기업 불안을 더 키우고 있다.
시급한 경제살리기 법안 처리는 하세월이다. AI발전기본법만 하더라도 22대 국회 들어 해당 상임위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현안에 매몰돼 표류하더니 이번엔 야당 주도로 KBS 사장 후보자 청문회를 유례없이 3일간 하는 바람에 처리가 뒤로 밀렸다. 민생은 말뿐 정략이 우선인 것이다.
반도체특별법, 전력망확충법, 고준위방폐장특별법 등은 정기국회가 개회한 지 두 달 반이 넘도록 무엇하다가 이제서야 심의에 들어갔다. 야당은 불법파업조장법으로 불리는 일명 노란봉투법의 연내 강행 처리를 예고하고 있고, 기업이 줄기차게 요구해 온 중대재해처벌법 개선, 법인세 인하는 철벽 방어하고 있다. 정치권은 기업인들이 왜 이런 호소문을 발표하게 됐는지 한 번쯤이라도 돌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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