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두 국가관계’로 규정한 지 1년이 돼 간다. 그동안 북한은 민족과 통일을 부정하는 조치를 취해 왔다. 먼저, ‘남조선’ 호칭을 ‘대한민국’으로 바꿨다. 비무장지대(DMZ) 일대에 지뢰를 매설하고 방벽을 설치했다. 육로를 완전히 단절했다. 개정된 헌법에서는 한국을 ‘적대국가’로 명시해 핵 공격 등 군사 도발의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대남 노선의 근본적 방향 전환’의 본질은 북한의 대남전략이 공세에서 수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북한의 통일 방안은 시대적 환경에 따라 변화를 거듭해 왔다. 남북연방제, 고려연방제, 1민족 1국가 2제도 2정부에 기초한 연방제, 낮은 단계의 연방제 등. 그럼에도 ‘민족 공조’와 통일은 적화통일 전술의 핵심 요소이자 3대 세습 지배를 위한 정당화 수단으로 유지됐다. 선대의 통일 유훈을 부정하는 노선 전환이 북한의 엘리트와 주민에게 얼마나 큰 이념적·정서적 충격과 혼란을 줬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모든 단절과 방벽은 방어적인 것이다. 만리장성은 유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멕시코 간 국경 장벽이나 프랑스·튀르키예의 장벽은 이민자의 밀입국 방지를 위한 것이다. “어떤 군대도 사상이 도래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는 빅토르 위고의 말처럼 어떤 무력과 장벽도 초연결 시대에 정보, 문화와 자유민주주의 사조의 유입을 막을 수 없다. 또한 체제를 보장해주지 못한다. 철의 장막을 친 소련은 붕괴되고 중동부 유럽에서 사회주의가 종식됐다. 베를린장벽을 건설한 동독은 결국 서독에 흡수통일됐다. 체제 경쟁에서 실패하고 구조적 모순이 한계에 도달한 북한이 생존을 위해 방어로 전환한 것이 두 국가론의 요체다.
북한의 반민족·반통일 추구로 한국은 역사적·민족적 정통성을 강화하게 됐다. 국제사회에서 한국 주도 통일의 당위성을 부각하고 통일 담론을 주도하게 됐다. 통일 한국이 삶을 개선할 수 있다는 믿음을 북한 주민에게 확산해 체제 변화를 촉진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러나 통일에 이르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당장 엄혹한 안보 상황 대응이 우선이다. 북한은 무력 통일 의도와 능력을 과시하고 내부 불만을 억누르기 위해 핵 위협을 노골화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의 협상에서 몸값을 높이고 남남 갈등을 유발하기 위해 무력 도발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동맹조약 체결 이후 북·러 간 군사 협력이 심화하고 러시아는 유사시 한반도 문제 개입 의사를 표출하고 있다. 미·중 간 패권 경쟁 속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인식하고 있는 중국은 한반도의 현상 유지를 선호한다. 우리의 외교·안보 정책과 통일 정책이 선순환하는 구조로 추진돼야 하는 이유다.
“역사의 기회가 안방에 들어오면 치맛자락으로라도 기회를 낚아채야 한다.” 19세기 후반 독일 통일을 앞두고 비스마르크가 한 말이다. 그러나 역사의 기회가 언제 올지 예측하기는 힘들다. 구조적 모순이 임계점에 달하고 대외적 환경이 맞아야 한다. 또한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지 않는다. 준비한 자에게만 온다. 독일 재통일은 소련 붕괴와 동유럽의 체제 전환 등 대외적 환경이 변화했을 때 수십 년간 준비되고 축적된 통일 역량을 적시에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무질서한 대전환의 시대에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것은 우리의 경제·군사적 역량과 강력한 동맹이다. 주변 4강의 이해와 협조를 얻기 위한 우호적 환경 조성 또한 중요하다. 일관되고 꾸준하게 미래를 준비하는 국민만이 역사의 기회를 낚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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