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주가가 바닥을 모른 채 곤두박질치고 있다. 4년 반 만에 최저가로 떨어지며 ‘5만전자’도 무너질 수 있는 상황에 처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력 확보에 의문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에 대한 불안 심리까지 겹쳤다.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반등 모멘텀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코스피지수도 당분간 하락세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동시다발 악재 …1등주의 추락
삼성전자는 13일 유가증권시장에서 4.53% 급락한 5만600원에 마감했다. 코로나19 공포가 극에 달한 2020년 6월 이후 약 4년 반 만의 최저가다. 올해 7월 10일만 해도 524조1469억원에 달한 시가총액은 이날 302조710억원으로 42% 쪼그라들었다. 삼성전자 주식을 계속 투매하고 있는 외국인은 이날도 7348억원어치를 팔아치우며 11거래일 연속 순매도를 이어갔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8월 말 56%에서 이날 52.1%로 떨어졌다.HBM 경쟁에서 밀려 ‘인공지능(AI) 빅사이클’에 올라타지 못한 가운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선 승리로 글로벌 사업 환경마저 불안해졌다. 트럼프 당선인이 공약대로 중국 수입품에 최고 60% 관세를 매길 경우 삼성전자 고객인 중국 기업의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로 중국에 7나노미터 이하 첨단 칩 공급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운드리 사업 대규모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삼성전자로서는 고객군이 계속 줄어드는 셈이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의 추격도 주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중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는 D램 생산능력을 4년 새 5배 끌어올렸다. 파운드리 기업 SMIC는 올 3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하며 선전하고 있다. 자립 기대로 중국 반도체 관련주 주가도 급등했다. 홍콩에 상장된 SMIC 주가는 최근 6개월간 60% 넘게 올랐다. 안정환 인터레이스자산운용 대표는 “중국 업체들이 삼성전자 D램 생산능력의 3분의 1까지만 따라와도 큰 위험이 닥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융위기급 ‘투심’ … 저가 매수는 기대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의 부진은 국내 증시 전체 투자심리를 악화시키고 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2.64% 하락한 2417.08에 마감하며 8월 5일 ‘블랙 먼데이’ 종가(2441.55) 밑으로 떨어졌다. 코스닥지수도 2.94% 내린 689.65를 기록하며 블랙 먼데이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700선을 내줬다. 두 시장에서 761개 종목이 52주 신저가를 나타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코스피지수 하락폭의 3분의 1은 삼성전자 한 종목 때문”이라며 “삼성전자 외 종목에도 하락 여파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외국인 투자자가 마음을 돌리는 상황도 현재로선 기대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반도체와 2차전지, 자동차 등 국내 주력 업종이 모두 트럼프 당선인 리스크에 노출돼 있는 데다 달러 강세로 환차손 우려까지 커졌다. 외국인 투자자는 이달 들어서만 국내 증시에서 1조5006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건규 르네상스자산운용 대표는 “금융위기 때만큼이나 투자심리가 악화됐다”며 “트럼프 당선인 집권 이후 부정적인 정책들이 추가로 나올 경우 하락폭이 확대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가가 바닥에 도달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성혁 더블유자산운용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내 증시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수준)이 매력적 구간에 들어온 것은 맞다”며 “저점 매력이 부각돼 매수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심성미/박한신/이시은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