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딸을 키우던 30대 '싱글맘'이 불법 사채업자의 협박에 시달리던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윤석열 대통령도 "불법추심은 악질 범죄"라며 "검찰과 경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추심을 뿌리 뽑도록 하라"고 12일 지시했다.
이날 서울 종암경찰서는 지난 9월 사망한 여성 A씨가 불법적인 추심을 당했단 의혹에 대해 "해당 사건의 용의자를 특정 중"이라고 밝혔다.
YTN 보도에 따르면 사채업자들은 A씨를 협박하는 것도 모자라, 6살 딸이 다니는 유치원 교사에게까지 문자 메시지를 보내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협박받던 A씨는 올해 9월 전북 전주시의 한 펜션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A씨가 남긴 메모에는 '사랑한다. 내 새끼. 사랑한다' 등 홀로 키워 온 딸에 대한 애정과 미안한 마음이 담겼다.
돈을 빌린 사채업자들과 빌린 액수도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사채업자들에게 수십만 원을 빌렸음에도, 높은 이자율 탓에 한 달도 되지 않아 원리금이 1000만 원 수준에 이르렀다. 사채업자들은 상환이 늦어질 때마다 1분에 10만 원을 추가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가 사채업자에게 써준 차용증에는 40만원을 언제까지 갚겠다고만 돼 있을 뿐 원금이나 이자율은 적혀있지 않았다.
사채업자들은 A씨 가족사진과 집 주소, 딸의 유치원 주소를 적어 협박하는 문자를 보냈고, '미아리에서 몸을 판다'거나 '돈을 빌리고 잠적을 하였다' 등 내용과 욕설이 담긴 문자도 수백 통 전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A씨 딸이 다니는 유치원 선생님에게 같은 내용의 문자를 발송해 A씨를 압박하고, 유치원에 직접 전화해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이 사건과 관련 윤 대통령은 "불법 채권추심 행위는 서민의 삶을 무너뜨리는 악질 범죄"라며 철저한 수사를 주문했다. 윤 대통령은 "검찰과 경찰은 수사 역량을 총동원해 불법 채권추심을 뿌리 뽑고 금융당국은 서민 금융지원 정책을 전면 재점검해 서민들이 불법 사채의 덫에 빠지지 않도록 하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A씨가 불법 사채업자들의 협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뉴스를 접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법 사금융 업체에서 2년여 동안 일했던 전직 불법 사채업자도 가장 먼저 배운 건 겁주는 방법, 그중에서도 지인 추심이라고 증언했다.
전직 사채업자는 YTN에 "돈을 안 갚으면 지인들에게 뿌리겠다며 나체 사진이나 영상을 받는 경우도 빈번하다"면서 "노출 사진을 보내면 이자를 조금 감면시켜 준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사채업자들은 아이 등 가족은 물론 친구나 회사 동료를 상대로도 불법 추심에 나서며 사회적으로 매장되게 하겠다고 피해자들을 협박하는데, 이를 위해 지인들 연락처를 담보로 받거나, 휴대전화에 프로그램을 깔아 주소록을 통째로 빼가기도 한다.
아이와 부모님, 친구와 직장까지, 피해자들의 모든 걸 손아귀에 쥔 사채업자들의 횡포에 사회적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박현근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13일 YTN 뉴스에 출연해 "불법 대부업체를 양산하게 만드는 제도적 허점이 있다"면서 일단 대부업 등록이 너무 쉽다는 점을 꼽았다.
박 회장은 "자본요건이 통장 잔액 1000만 원만 있으면 되는데 일단 등록할 때 한 번 증명하면 되고 이후 출금해도 등록 취소가 되지 않는다"면서 "고정사업장이 필요한데 공유오피스를 이용해서 사실상 대부업체를 찍어내듯이 만들어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불법 대부업 조직을 일망타진하는 데 시간과 인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데 막상 그 많은 인력을 투입해서 성과를 올리더라도 법원에서 처벌 수위가 그리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면서 "피해자들 또한 스스로 피해자임을 호소하고 구제받는 데 있어서 우리 법 실무가 적극적으로 조력해 주지 않는 면도 있다. '당신이 돈을 빌렸는데 못 갚아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느냐'는 시각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채무자 구제 절차나 지원 절차가 아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급한 상황에 내몰린 채무자들 같은 경우에는 결국 돈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이런 사람들을 위한 긴급 자금이나 정책 자금의 규모가 부족하다, 서민금융제도가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면서 "불법 대부업자에 대한 민사적인 페널티가 부족하다. 아예 원금도 못 받을 수 있게 하는 장치가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