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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에세이] 공간에 담긴 우리 사회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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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침 남편과 함께 먹을 것이 든 찜통을 들고 서울 잠실 풋살경기장으로 향했다. 해마다 이맘때면 서울시장기 유소년풋살대회가 개최되기 때문이다. 축구에 진심인 아들이 지난 1년간 지역에서 운영하는 축구교실에서 갈고닦은 기량을 펼칠 때가 온 것이다.

결과에 상관없이 아이들을 보낸 부모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친구들을 응원하러 온 가족들까지 집마다 싸 온 먹을 것을 꺼내 놓으면 그야말로 마을 잔치다. 골키퍼인 아들이 골대에 서면 조마조마한 마음에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데, 되레 아들은 “엄마, 오늘은 네 골밖에 안 먹었어”라며 긍정 마인드를 보인다. 함께한 친구들도 “주훈이 덕분에 골 더 안 먹은 거예요”라고 거들어준다. 부모가 집에 없는 동안 아들이 휴대폰이나 게임에 빠지기보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공터에서 축구 경기를 하는 모습은 참 흐뭇하다. 건강한 신체와 협동정신 등 체육활동이 어린이에게 주는 긍정적 영향은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 어린이·청소년은 각 지역에 겨우 한 면씩 있을까 하는 풋살 경기장에서 비좁게 연습한다. 지역 내 여자축구단, 지역 청소년 축구단, 성인 풋살팀과 뒤섞여 공을 차고 있는 게 현실이다. ‘아이들의 놀 권리’ ‘아동의 놀이터 보장을 위한 조례’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늘 요란하다. 그런데 정작 아이들 공간에 대한 배려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가 올초 “한국이 저출생으로 몸살을 앓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아이가 있다는 것만으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라며 전국 ‘노키즈존’이 500곳이 넘는다고 보도했다. 자치구에서 새로운 운동시설을 설치할 때 동호회나 지역클럽이 많은 파크골프, 배드민턴, 탁구장 등이 우선이다. 아동, 청소년을 위한 체육시설은 늘 후순위다. 잘 만들어진 시설은 실제 사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암묵적 노키즈존이다.

우리 아이들을 위해 비싼 사교육에 해당하는 스포츠클럽에 보낼 필요 없이 언제든 뛰어놀 수 있는 안전한 아이들을 위한 동네 체육공간과 지도자가 있다면 어떨까.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서울형 키즈카페 400곳 설치를 목표로 시행한 ‘양육자욕구 조사’에 따르면 키즈카페 공간에 필요한 요건으로 청결, 뛰어놀 수 있는 공간, 이용료 부담이 없어야 함 순으로 응답이 나왔다.

재단은 서울가족플라자에서 서울 시립 1호점 키즈카페를 운영 중이다. 주중에는 3회차, 주말에는 5회차로 돌리고 있는데도 예약시스템을 열면 그야말로 광클릭으로 인해 몇 분 안에 예약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다. 공적 시스템으로 아이들을 위한 공간을 늘릴 수 있다면 ‘어린이 놀 권리 헌장’ 같은 것을 굳이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공간과 디자인을 보면 그 나라의 정책과 철학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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