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담도암은 1년 이상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면역항암제가 표준 치료로 자리 잡으면서 생존율과 삶의 질이 높아지는 장기 생존 시대가 열렸죠. 담도암 환자의 치료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해 건강보험 혜택을 확대해야 합니다.”
박준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사진)는 11일 이렇게 말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담도·췌장암 환자를 치료하며 정밀의학혁신연구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올해 5월 대한종양내과학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암 환자를 책임지는 종양내과는 다른 진료과 못지않게 중요한 필수의료 분야”라며 “종양내과 의료진이 소신껏 일하도록 돕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국내 담도암 사망률은 환자 10만 명당 11.6명으로 세계 1위다. 5년 생존율은 28.9%로 전체 암(72.1%)의 3분의 1 수준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이 항암 신약 개발 경쟁을 벌이며 암 사망률은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추세다. 표적·면역항암 신약이 잇따라 나온 뒤 2010년 20.3%이던 폐암 5년 생존율은 2021년 38.5%로 높아졌다. 반면 담도암은 같은 기간 생존율이 26.9%에서 28.9%로 올라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1세대 항암제로 불리는 화학항암제 두 가지를 함께 투여하는 ‘젬시스’ 요법이 새 담도암 치료제로 등장한 게 2010년이다. 이후로도 오랜 기간 신약이 개발되지 못했다. 박 교수는 “담도암은 해부학적 위치가 비슷해도 환자마다 유전자 변이와 암 특성이 달라 특정 치료제만으로 효과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2022년 담도암 신약으로 허가받은 영국 아스트라제네카의 면역항암제 ‘임핀지’는 환자들에게 희망이 됐다. 젬시스 등장 후 12년 만에 생존율을 두 배 이상 높인 신약이 나왔기 때문이다. 임핀지 투여 환자 14.6%는 3년 넘게 생존한다. 한국에선 이 비율이 21%에 이른다. 담도암도 장기 생존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 담도암 환자 치료 성적은 월등하다. 이 약을 쓴 한국 환자의 사망 위험은 쓰지 않은 환자보다 42% 낮다. 세계 평균은 26%다. 박 교수는 “환자를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국내 의료진 역량과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환자를 포기하지 않는 한국 의료진의 노력이 높은 치료 성적에 영향을 줬다는 것이다.
폐암 환자에게 주로 쓰던 임핀지를 담도암 환자에게 사용하도록 활용 범위를 확대한 연구도 한국 의료진이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한국에선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활용에 제약이 크다. 박 교수는 “경제적 부담 탓에 치료를 못 받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며 “약을 쓰면 환자가 생업으로 돌아갈 수 있는 데다 다른 의학적 문제로 지출하는 비용도 줄어든다”고 했다. 신약이 가져올 사회적 이익까지 고려해 보험 혜택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