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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2' 미로계단에 투영된 네덜란드 판화 거장 에셔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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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를 위해 456번이 적힌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게임에 또 한 번 도전하는 성기훈(이정재 분)과 그를 맞이하는 프론트맨(이병헌 분)의 맞대결. 다음달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오징어게임’ 시즌2의 얼개다. 아수라장 속에서 “이러다 정말 다 죽어요!”라는 묘한 기시감이 드는 대사를 외치는 기훈의 모습이 예고편으로 최근 공개되자 전편 복습에 나서며 혹시 놓친 ‘떡밥’(복선이나 실마리)은 없는지 살피는 모습도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과거 이야기를 들춰도 크게 눈에 띄는 건 없다. 치열한 게임을 치른 탓에 전편 등장인물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 시즌2에서 양동근, 임시완, 박성훈 등 새 인물들이 대거 나오는 이유다. 대신 눈여겨볼 건 오징어게임의 주 무대인 무인도 게임장이다. 시즌2도 비슷한 공간에서 이야기라 진행되는 터라, 이곳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면 보다 해상도 높은 오징어게임을 즐길 수 있다. 넷플릭스측이 최근 공개한 대전 세트장의 모습을 통해 무대에 숨겨진 메타포를 짚어봤다.



미로계단 욕망, 그리고 에셔의 ‘상승과 하강’

네덜란드의 판화 거장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1898~1972)의 작품세계는 신비롭다. 기하학적 원리와 수학적 논리에 기초한 패턴, 인지를 비트는 착시와 모순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평면과 입체를 넘나드는 그의 그림들은 당시 현대 미술계가 “이게 예술이냐”며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수학자들이 열광할 정도로 독특했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영국의 수학자 겸 이론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 경이 고안한 ‘펜로즈 삼각형(Penrose Triangle)’도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에셔의 작품적 특징은 ‘오징어게임’ 미로계단에 투영됐다. 참가자들이 게임장과 숙소를 이동할 때 오가는 노랗고 분홍색의 계단 통로다. 이 공간은 시즌1과 같은 방식으로 설계와 디자인됐는데, 에셔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다. 채경선 미술감독은 “학창시절부터 에셔의 작품을 사랑했고, 그의 작품을 작업에 표현하고 싶어 고민했는데, ‘오징어게임’을 만나면서 작품 주제에 맞춰 디자인하게 됐다”며 “에셔 작품의 모순과 역설같은 부분을 참고해 디자인했다”고 설명했다.



예술가로 성공을 거두고 싶었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그렇다고 수학자들과 대화를 나눌 만큼 수학 이론을 아는 것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던 그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평소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삶에서 늘 위로 올라가고 있다고 상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려 뼈 빠지게 일합니다. 하지만 결국 한 발짝도 더 멀리, 더 높이 올라가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포기하고 내려가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이 모든 게 얼마나 터무니없는지.” 수도사들이 한 줄로 걷지만, 계단을 오르는 건지 내려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상승과 하강’(1960), ‘상대성’(1953)이 이를 보여주는 대표작이다.

▶▶[관련기사] "당신이 왜 수포자야"…수학자들 깜짝 놀란 이유가 (성수영의 그때 그 사람들)

실제로 ‘오징어게임’에서도 미로 계단은 게임 참가자들의 욕망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소다. 목숨을 걸고, 누군가를 밟고서라도 456억원이라는 돈을 손에 넣어 위로 올라가려는 욕망이다. 시즌1에서도 이 장소에서 참가자들이 음모를 꾸미거나 갈등을 빚기도 하는데, 결국 누구도 위로 올라가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에셔의 ‘상승과 하강’에서 계단을 오르내리는 걸 거부하고 발코니에 기대고, 계단에 걸터앉은 두 인물이 있다는 것. 마치 시스템을 벗어나려 애쓰는 기훈과 시스템을 지배하는 프론트맨이 은유되는 듯하다.



‘오징어게임’ 시즌2에선 이 미로계단의 존재감이 더욱 부각될 예정이다. 채 미술감독은 “(시즌1에서) 아쉬웠던 공간감이나 동선을 추가했다”며 “높이도 더 올려 11m 정도로 시즌1보다 더 규모 있는 디자인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엔 다양한 캐릭터가 많이 나온다”며 “캐릭터들의 갈등과 관계, 그리고 자신의 여러 입체적인 감정표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미로복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사건들이 펼쳐지게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숙소에 그려진 대형 OX…“편가르기 풍자”

시즌2 세트장이 시즌1과 달라진 점은 등장인물들이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 숙소 바닥에 커다란 O, X 표시가 그려졌단 것이다. 이를 두고 황동혁 감독은 “시즌2에서 게임이 끝날 때마다 참가자들이 투표를 통해 남을지, 나갈지를 결정하게 되는데 O와 X 선택에 따라 무리가 나뉘고, 서로 편가르고, 갈등이 벌어지는 장치를 삽입했다”며 “세계적으로 종교갈등이나 전쟁도 많고 국내에서도 ‘이대남’, ‘이대녀’ 같은 젠더갈등부터 지역갈등처럼 선을 긋는 그런 것에 대한 풍자요소”라고 말했다. 돈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계급갈등 뿐 아니라 수평적으로도 벌어지는 ‘서로 간의 구별’을 중요한 테마로 삼고 O와 X로 녹여냈단 뜻이다.



O와 X 사이를 가르는 선이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그려진 점도 이런 갈등 테마를 뒷받침하는 요소다. 채 미술감독은 “OX에 대한 직관적인 느낌은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라는 대립의 시작”이라며 “우리사회의 이념이나 전세계적으로 기호화된 (이런 갈등을) 의미하는 것을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표현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선택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채 미술감독은 “조명 작업을 통해 밤에 숙소 불이 꺼지면 LED로 OX가 환하게 밝혀진다”며 잠을 자는 시간에도 갈등이 지속된다는 점을 암시했다.

한편 ‘오징어게임’은 2021년 9월 공개된 시리즈로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많은 시청시간을 기록한 최고 인기작으로 꼽힌다. 미국 방송계 최고권위 시상식인 에미상에서 남우주연상과 감독상, 미술상 등 6관왕에 올랐다. 시즌2는 오는 12월 26일 공개된다.



유승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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