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 발언과 성범죄 이력 등으로 비판을 받아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이에 좌절한 미국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성주의 '4비(非) 운동'(4B movement)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7일(현지시간)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4비 운동'이 주목받고 있고,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관련 해시태그 게시물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게시자들은 이번 대선 결과에 실망감을 표시하면서 한국의 4비 운동에 대해 소개하거나 자신도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4비 운동은 비혼, 비출산, 비연애, 비섹스에서 따왔다. 신문은 '비'(非)는 영어로 'No'를 의미한다며, Bi-hone(비혼)은 no marriage 또는 willingly unmarried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더불어 4비 운동이 한국에서 2010년대 중·후반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확산된 온라인 페미니즘 운동이며, 한국의 페미니즘은 2016년 20대 여성의 강남역 살해사건을 계기로 목소리를 키웠고, 2018년 미국의 미투(MeToo) 운동도 전국적으로 번지며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부연했다.
한국에서 있었던 '탈코르셋' 운동에도 주목했다. 탈코르셋 운동은 남성 우위 가부장적 사회에 대한 반항과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여성성'을 문제 삼으며 머리를 짧게 자르고, 중성적인 옷차림을 하며, 화장을 하지 말자는 취지로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을 통해 확산됐다. '꾸밈'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아껴 내면을 채우고, 자기 계발에 힘쓰라는 것.
4비 운동은 여기에서 나아가 남성과 관계를 맺는 결혼과 출산은 물론 연애와 성행위마저 거부하는 방식으로 불평등, 여성 혐오, 성차별, 성폭력에 저항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들 여성운동이 너무 극단적이라는 비판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워싱턴포스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중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이자, 세계에서 합계출산율(0.72명)이 가장 낮은 나라인 한국에선 4비 운동과 페미니즘이 양극화가 심한 주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트럼프'라 불리는 윤석열 대통령은 젊은 남성 유권자들의 표심에 힘입어 선거 유세 과정에서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하는 등 성별 격차를 부추겼고, 여성단체들이 비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미국 대선 결과가 발표된 이후 4B 운동은 온라인 상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 하나로 부상했다. 지난 6일 하루에만 20만명이 구글에서 이 단어를 검색한 것으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 뿐 아니라 가디언, NBC, CBS 등 주요 언론도 잇따라 보도를 내놓으며 4비운동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NBC는 "트럼프의 승리는 많은 여성에게 생식권(출산과 관련해 여성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의 후퇴라는 신호로 여겨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국 여성들의 좌절감은 남성과 이성애적 관계, 그리고 가부장제 참여를 거부하는 새로운 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예일대 사회학과 박사 과정 최미라 씨의 분석을 인용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