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번 미국 대선을 포함해 각국 주요 선거에서 여론조사가 예측에 실패하는 현상이 이어지면서다. 기존 여론조사 방법론에 한계가 명확해지는 상황에서 제도 보완 등을 통해 여론조사 고도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세계 곳곳에서 쏟아진 여론조사의 실패
8일 기준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선거인단 295를 확보하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226을 따돌리고 압승을 거뒀다. 득표율로 따져도 50.7% 대 47.7%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승리다. 개표 첫날부터 트럼프 전 대통령은 내내 3%포인트 격차를 보이며 압승을 일찌감치 예약했다. 이는 예상 밖의 결과였다. 파이브서티에이트 등처럼 여론조사의 평균을 낸 조사도, 이코노미스트와 미 컬럼비아대가 합작해 각종 여론조사에 과거 선거·인구·경제 통계 등을 조합해 개발한 '빅데이터' 기반 선거 예측 모델도 해리스 부통령의 승리를 점쳐졌기 때문이다.
지난 4월 한국 총선에서도 여러 여론조사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박빙의 승부나 국민의힘이 근소하게 밀린다는 결과를 내놓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지난 7월 프랑스 총선에서도 극우 국민연합(RN)이 압승할 것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쏟아졌지만, 실제로는 좌파연합 신민중전선(NFP)의 승리였다. RN은 압승은커녕 3위에 그쳤다.
정치 전문가들은 최근 여론조사 자체가 더는 대중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데 한계가 많다고 입을 모았다. 대부분 양당 체제에서 정치가 점점 더 양극화가 심해지는 가운데, 숨은 '스윙 보터'(중도층)의 마음을 담는 데 민감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여론조사에서 사람들이 비교적 솔직히 응답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며 "'샤이'족을 잡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김관옥 정치연구소 민의 소장은 "여론조사가 난립하다 보니 불성실한 응답도 많아지고 있다"며 "결과를 제대로 예측할 만큼 조사 대상 분포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여론조사 대표성 키울 방법은
이번 미 대선 결과인 3%포인트 격차를 마치 예견처럼 맞춘 J.L 파트너스의 설립자 제임스 존슨은 최근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2016년과 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트럼프 유권자들은 정치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작고, 여론조사원과 20분 동안 이야기하지 못할 정도로 바쁠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며 "이들은 그저 흔한 직업을 가지거나, 히스패닉 유권자들처럼 두세 개의 직업을 동시에 하는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이러한 표본을 확보하는 '샘플링'이 문제였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J.L 파트너스에게 조사를 의뢰한 영국 데일리메일은 6일(현지시간) "우리의 조사 방법은 2016년과 2020년에 지속해서 간과된 잠재적 유권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에 집중했다"며 "이들은 최근 선거에서 참여하지 않고 정치적 저참여 유권자들이며 여론조사에 참여하지 않는 유형"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통적인 방식(온라인 및 전화 조사)에 문자 메시지 여론조사,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푸시 알림 등을 혼합했다. 이런 방법이 트럼프에 변화를 가져다준 유권자에게 다가간 것이다. 이들은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 고졸, 노동 계층 등의 남성"이라고 전했다.
현재 한국 여론조사는 사전에 선관위에 여론조사 실시 신고를 한 후 휴대전화 가상번호 등을 받아 전화자동응답(ARS)이나 전화 면접(CATI) 방식 등 정해진 틀에서만 허용되고 있다. J.L 파트너스와 데일리메일이 실시한 여론조사는 한국에서 불가능한 상황이다.
김 교수는 "현재 여론조사 방법으로는 극명한 한계가 있다"며 "반복되는 여론조사의 허점을 개선하기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