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의 요리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인 ‘흑백 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은 ‘이븐하게 익지 않았어요’ 같은 대사가 유행어가 되는 등 비영어권 시청률 1위라는 기록을 넘어선 적잖은 사회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동안 방송이나 SNS에서 소위 ‘먹방’ 프로그램은 하나의 장르가 됐는데, 먹는다는 행위가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맛과 비주얼의 극단까지 탐구하는 예술의 경지가 된 것인가. 급기야 먹는다는 행위가 인간의 본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먹는 인간, 호모 에덴스(Homo Edens)’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여기서 먹는다는 것은 미식을 의미한다.
미식에는 프랑스가 상당히 앞서갔다. 치안판사이던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은 <미각의 생리학>(1825)을 저술해 ‘새로운 요리의 발견은 별의 발견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해 더 많은 일을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를 염두에 두고 미식가 캐릭터를 구상했다는 마르셀 루프의 소설 <도댕 부팡의 삶과 열정>(1924)은 요리의 향연과 주인공의 삶이 품격 있게 어우러진 영화 ‘프렌치 수프’로 재탄생됐다.
쩐 안 훙 감독은 이 영화로 2013년 칸국제영화제 감독상을 받았고, 아카데미 국제장편영화상 프랑스 대표로 출품된 바 있다. 요리사 외제니(쥘리에트 비노슈)와 미식가 도댕(브누아 마지멜)이 20년간 함께 일하면서 진정으로 사랑하며 교감했던 관계를 보여주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더 테이스트 오브 싱스(The Taste of Things)’와 ‘더 포토푀(The Pot-au-Feu)’다. 도댕은 시골 저택에 살지만 ‘요리계의 나폴레옹’으로 불릴 정도로 유명하다. 포토푀는 도댕이 유라시아 왕자의 초청으로 갖은 산해진미를 맛본 후 그 답례로 결정한 메인 요리다. 프랑스의 평범한 가정식 수프지만 도댕은 포토푀에 자신만의 향취를 담고자 한다.
촬영을 전공한 쩐 안 훙 감독이 추구해온 빛과 색감의 아름다움은 더욱 탐미적으로 관객의 시각을 자극한다. 전채 요리와 다양한 메인과 디저트는 요리예술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요리 자문을 맡았던 미쉐린가이드 3스타 셰프 피에르 가녜르는 카메오로 출연해 유라시아 왕자의 만찬 메뉴를 소개했다.
실제로 프랑스인 요리사가 테이블 앞에 와서 아이스크림 케이크 표면의 단열효과를 내는 머랭(계란 흰자로 만든 디저트) 위에 술을 부어 불을 활활 붙이면서 시연한 디저트 오믈렛 노르베지엔은 영화 속 절대 미감을 가진 폴린(보니 샤그노-라부아르)이 이것을 맛보고 ‘울 뻔했다’로 말한 바로 그 맛이었다. 호모 에덴스의 라틴어 어원 ‘에도(edo)’는 먹어 치우다, 소비하다의 의미라고 한다. 미식도 결국 우리 삶처럼 소비돼 버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미식의 성찬은 사라질 것에 대한 19세기적 찬미가 돌아온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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