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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공급 정책은 시간보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더 머니이스트-최원철의 미래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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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시간이 아니라 방향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은 많은 철학자들이 강조하는 주제입니다. 그리고 이를 도시화 과정에서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도시들이 바로 파리, 로마, 런던, 도쿄, 뉴욕 등 세계적인 도시들입니다. 이 도시들은 적게는 수백 년, 많게는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지금까지도 큰 문제 없이 주거와 관광 등의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국내의 경우,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도시를 빠르게 개발하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성냥갑처럼 개발된 벽식구조 아파트로 인해 녹물이 나오고, 층간소음 문제가 커지며, 지하 주차장이 부족해 주차난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새로 건설된 신축 아파트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얼죽신'(얼어죽어도 신축) 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선거철만 다가오면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수많은 도시 개발 및 주택 공급 대책이 갑자기 쏟아집니다. 하지만 그 정책들이 정말 미래의 후손들이 편안하게 내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만드는 정책인지, 아니면 당장 커지는 문제를 빠르게 해결하려는 정책인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해봐야 합니다.

최근 전세 사기 문제 이후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부실화되면서 아파트 인허가와 착공이 크게 줄었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정비사업 규제 완화, 비아파트 공급 정상화, 수도권 공공택지 신속 공급, 그린벨트 해제 등이 담긴 8·8 대책을 급하게 발표했습니다. 49개 정책 과제 가운데 17개는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실행할 수 있다는데, 여야 간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진행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8·8 대책을 통해 6년 안에 42만7000가구를 공급하겠다고 했지만, 실제 진행되고 있는 사업은 1기 신도시 선도지구나 3기 신도시 착공 정도에 불과합니다. 예정된 공급 물량의 10%도 진행되지 않은 셈입니다. 그린벨트를 해제한 지역 또한 10년 내 입주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 큰 문제는 1기 신도시 선도지구 등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진행되더라도 도로와 같은 기반 시설 확충이 쉽지 않은 탓에 주거환경이 열악해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많은 공무원이 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 도쿄의 '롯폰기 힐스'나 최근 준공된 '아자부다이 힐스' 등은 장기간에 걸쳐 계획·건설되었기에 교통 등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아파트를 구입할 때 주차장을 별도로 구매하게 하는 등 철저한 규제도 뒤따랐습니다.

국내의 경우 서울 재건축·재개발은 신속통합 방식으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1기 신도시 선도지구는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개발 방식이 미래 후손들이 살기에 적합한 도시를 만들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빠르게 건설하기 위해 벽식구조 위주로 아파트를 짓다 보니 30년 뒤 다시 재건축해야 할 상황이 올 가능성도 큽니다. 온라인 쇼핑이 보편화한 상황에서 대규모 상업지역을 조성하는 것도 현실에 맞지 않으며, 재택근무가 늘어나는데도 대규모 업무지역을 개발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숙박시설이 부족하다고 생활형 숙박시설을 건설하도록 하더니 그것도 결국 주거용으로 바꾸는 상황마저 벌어졌습니다.

이 모든 문제는 단기적으로 주택 공급을 늘리고자 종상향 등 특혜성 계획만 세우고 있을 뿐, 빠르게 변화하는 미래 시대에 맞는 도시계획이 부재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단기적인 주택 공급에만 급급하기보다는 서울과 수도권은 어떻게 개발되어야 할지, 지방 도시는 어떻게 소멸을 방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방향을 미리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세부 계획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시간'보다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격언을 되새겨봐야 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최원철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특임교수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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