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치권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된 상법 개정안을 국회에 발의했다. 이들 법안은 유능한 이사 후보들에게 기업의 이사가 되는 것을 주저하도록 하고, 현 이사들은 복지부동하며 책임만 회피하게끔 하고, 다른 의도를 가진 사람만 이사회에 들어와 이사회를 싸움판으로 만들 우려가 있다. 일부 정치권과 주주행동주의자, 그리고 일부 학자의 주장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검토해보자.
첫째, 맹목적으로 자신의 견해에 부합하는 해외 판례이론을 추종하고 있다. 회사법은 개별 국가별 특수성이 있다. 당해 국가에서도 특수한 사례에서 적용돼 오던 법리, 예를 들어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를 마치 전 세계적으로 확립된 법 이론인 것처럼 호도해선 안 된다. 특히 판례는 개별 사안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법률과 구별된다. 판례는 구체적인 문제 상황을 해결해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로 판례가 있다는 것과 법제화됐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에만 있는 갈라파고스 규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않다가 특정 이슈에만 입맛에 맞는 외국 판례나 입법례를 끌어오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둘째, 입법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사 충실의무 강화는 한국 기업의 이사회 역할을 생각할 때 몇 단계를 건너뛴 얘기다. 아직 한국에선 이사회 중심의 경영이 자리 잡는 과정이고, 이사의 보수도 매우 낮다. 이 상황에서 이사의 책임만 법제화하면 합리적인 사고와 전문성을 지닌 뛰어난 이사를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을 것이다.
셋째, 이사회에 일부 문제가 있다고 해도 해법이 현명해야 한다. 나쁜 입법은 상황을 악화시킨다. 치료는 환자를 낫게 하려는 것이지 죽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정치권은 이사 충실의무 확대 논의 후 아예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선임 시 대주주 측 의결권을 3%로 제한하거나 주주행동주의자의 지분력을 몇 배로 불려주는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택한 현대 국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도를 글로벌 기준이라고 미화하면서 국회에 발의한 프랑켄슈타인 입법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좀먹을 것이다. 이사회를 이사들이 서로 충실의무 위반이라며 폭로하고 소송하는 막장 싸움판으로 만들고, 이사를 복지부동하게 하면 다음 세대가 일할 기업을 없애는 절망적인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이사회 관련 상법 개정이나 상장회사특례법 제정 논의는 충분한 검토와 연구의 결과물이어야 한다. 정치권의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법조계와 학계가 나서서 합리성과 예상 문제점을 논의해 결정해야 한다. 성급히 하다가는 주주 보호도 안 되고, 좋은 이사를 모실 수도 없고, 경쟁력 있는 대한민국 기업들도 없어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사 충실의무 강화 등의 입법 논의가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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