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가 만나서 서로에 대해 알려면 꼭 해야 할 세 가지를 기억하세요. 첫 번째는 여행, 두 번째는 화투, 세 번째는 음식이에요. 같이 음식을 만들어보고, 먹어보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과 감정을 느껴봐야 상대방이 자신의 인연이 맞는지 알 수 있어요."
2일 저녁 전남 장성 소재 천년고찰 '백양사'의 부속 암사 '천진암'. 암사 주지이면서 사찰 음식 명장으로 널리 알려진 정관 스님의 이 같은 말에 24명의 남녀 청춘들은 귀를 기울였다. 이들은 미혼 남녀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 백양사' 참가자들로, 자신의 인연을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정관 스님은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과 성품은 음식의 맛, 모양새에 그대로 묻어나온다. 거짓말 같아도 평생 요리해보니까 진짜더라"라며 "오늘 처음 만나 연을 맺은 분들과 함께 요리하면서 서로의 눈빛, 손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길 권한다"고 당부했다.
백양사에서 진행된 올해 네 번째 '나는 절로' 행사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날부터 1박 2일간 30대 남녀로 구성된 참가자들이 서로 짝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됐다. 신청 단계에서부터 남성 472명, 여성 475명 합쳐 947명이 지원, 앞선 8월 낙산사 행사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많은 지원자가 몰릴 만큼 높은 관심을 받았다.
특히 이날 행사가 더 많은 이목을 끈 이유는 바로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 체험 때문이다. 2017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셰프의 테이블'을 통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정관 스님은 현재 가장 유명한 'K-셰프'로 꼽힌다. 2018년엔 요리 업계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제임스 비어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도 많은 세계적 셰프들이 스님에게서 영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음식을 봐, 요리하는 사람을 봐야지"
'명장' 정관 스님의 솔로를 위한 메뉴는
이날 새벽 서울 조계사에서 모인 30대 남녀 24명은 다소 경직된 분위기로 백양사행 버스에 탑승했다. 사찰이 위치한 전남 장성이 '홍길동의 고장'이란 점에서 남성은 O길동, 여성은 O길순이란 별명이 정해졌다. 길동과 길순들은 제비뽑기로 뽑은 버스 좌석에 앉아 상대 이성과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명장' 정관 스님의 솔로를 위한 메뉴는
백양사에 도착해 법복으로 갈아입은 참가자들은 가장 먼저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직업과 출신, 취미도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인연을 찾겠단 열의만큼은 한마음이었다. 자신을 11년 차 초등 교사라고 밝힌 30대 김길동(가명)은 "무지개 같이 빛나는 사람을 만나고, 나도 무지개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내장산에서 직접 딴 야생 녹차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1:1 차담 로테이션'이 진행된 후 모든 참가자가 기다리던 '사찰 음식 체험'이 시작됐다. 장소는 백양사에서 경사 높은 산길을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도착하는 부속 암자 천진암.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찰 음식의 대가인 정관 스님이 주지로 있는 곳이다.
긴 테이블에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는 참가자들을 본 정관 스님은 "저도 원래 남자를 좋아해요"라고 농담을 던지며 운을 뗐다. 정관 스님은 "어린 나이에 출가해 지금도 중학생들 보면 괜히 얼굴이 빨개진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그때 그 감정은 평생 가지고 가는 것"이라며 "여러분도 오늘 행사에서 어떤 사람에게 어떤 감정이 드는지를 잘 살피길 바란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각각 네 팀으로 나뉘어 표고버섯 조청 조림, 애호박 두부찜, 열무 된장무침, 감말랭이 고추장 무침을 직접 조리했다.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는 암사 인근에서 재배한 채소와 직접 담근 고추장, 매실청 등 각종 장류로 비교적 단출했다. 스님은 네 팀의 조리대를 수시로 오가며 직접 조리와 재료 손질 과정을 시연해줬다.
단연 정관 스님의 시그니처 메뉴라고 할 수 있는 표고버섯 조청 조림이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지난 9월 세계 3대 요리 학교인 르꼬르 동 블루 런던의 에밀 미네프 셰프도 맛보고 놀란 바로 그 요리다.
물에 간장, 소금, 들기름을 넣고 표고버섯을 삶다가, 자작해지면 마지막에 조청을 넣어 완성한다. 조리법은 간단해 보이지만, 그 맛과 향은 깊었다. 해당 음식을 맛본 여성 참가자 박모 씨는 "표고버섯이 쫄깃한 만두 같았다"며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양념 물이 쫙 터져 나오는데 왜 정관 스님이 유명한지 알았다. 당장 점심때 먹은 사찰 음식과 전혀 다르다"고 전했다.
참가자들은 음식만큼이나 정관 스님의 쏟아내는 통찰력 있는 말에도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스님은 "참나무 하나에서 표고버섯이 1년에 20개씩 밖에 안 나온다. 그것도 3년만 지나면 이미 나무의 기운이 모두 버섯에 흡수된 뒤라 버섯 향이 옅어진다"며 "이 소중한 표고버섯은 끓을 땐 자기 향을 물에 쏟아내다가, 조릴 땐 다시 그 양념 물을 흡수한다. 연인도 똑같다. 서로가 내주고 또 받으면서 관계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애호박 두부찜은 일정 크기로 썬 애호박의 속을 씨방까지만 파내고, 두부를 넣어 찌는 음식이다. 마지막에 청색 국화를 올려 마무리한다. 부드러운 맛이 핵심이므로 두부를 잘게 으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님은 "두부가 지금 모습이 되기 이전 상태가 되도록 정말 잘게 으깨야 한다. 이도 저도 아니면 애호박 그릇에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며 "사람이나 식재료는 진짜 그 모습으로 돌아갔을 때 제대로 된 맛이 나온다"고 전했다.
동시에 정관 스님은 '나는 절로'의 훌륭한 커플 매니저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다. 한 남성 참가자가 바로 건너편의 이성 참가자가 감말랭이를 고추장에 무치는 모습을 보고 "조청이 들어가니 색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하자, 스님은 "지금 요리를 왜 봐, 요리하는 사람을 봐야지"라고 꾸중해 주변에서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는 총 각각의 접시에 각각 담겨 식탁 위에 차려졌다. 정관 스님은 발우 공양에 앞서 "오늘 높은 경쟁률을 뚫고 이 자리에 온 여러분 모두가 사실 인연"이라며 "인간은 현재, 과거, 미래를 항상 함께 안고 살아간다. 오늘 인연이 끊어지면 내일을 기약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 식사하자"고 참가자들을 격려했다.
이튿날까지 이어진 행사에서 참가자 총 12쌍 중 7쌍의 커플이 탄생했다. 올해 진행한 행사들과 비교해 역대급 성사율이다. 호감 가는 여성과 성공적으로 맺어진 이모 씨는 "행사에서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 사찰 음식 체험이었다"며 "그런데 음식보다 정관 스님 말씀에 더 놀랐다. 체험 이후 마음이 차분해져서 야간 산책 등에서 원하는 분께 담담하게 마음을 전했다"고 말했다.
"예전엔 뉴욕 등 해외 대도시에 가서 우리가 직접 한식을 홍보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 노력이 점차 쌓이면서 지금은 완전히 상황이 달라진 것 같아요. 이제는 그들이 'K-푸드'를 배우기 위해 우리나라에 와 우리를 찾잖아요."
사찰 체험 프로그램이 끝난 후 만난 사찰 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은 한경닷컴에 "최근 K-푸드의 위상이 올라간 것을 해외가 아니라 오히려 국내에서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관 스님은 "한식 중에서도 사찰 음식은 "2013년 백양사 천진암에 자리 잡기 전인 2010년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5~6년 전부터 많은 외국인이 사찰 음식을 맛보기 위한 '미식 여행'으로 국내 절을 찾는다"며 "지금 이곳도 매주 템플 스테이와 함께 사찰 음식을 접해보기 위해 30명의 방문객이 들른다. 이 중 20명이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등 가까운 나라를 제외하면 과거엔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서구권에 머물렀다면, 요즘은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에서 특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특히 대만에서 사찰 음식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사를 통해 단체로 백양사를 찾는다"고 전했다.
'K-푸드'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선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란 답변이 돌아왔다. 정관 스님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세상이 뒤집히지 않았나. 이젠 자기 건강과 에너지는 나 스스로가 지켜야 하고, 모두를 의심하는 세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식은 저장 음식과 발효 문화가 핵심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각종 콩 등이 모두 식물 단백질이고, 발효 과정에서 영양분이 나온다"며 "질병으로 인해 커진 건강에 대한 관심이 한식과 맞물리면서 더 많은 세계인에게 K-푸드가 주목받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은 'K-파인 다이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외형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조미료 없이 내는 뛰어난 맛 때문이다. 그는 평소 "자연이 내주는 제철의 온갖 식자재가 곧 육신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전통 장류를 홍보하는 데 집중할 뜻을 내비쳤다. 정관 스님은 "3년 전부터 간장 등 우리 장 담그는 방법을 알리고 있다. 목표는 문화유산 등재다. 지금 90% 가까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사찰 체험 프로그램이 끝난 후 만난 사찰 음식의 대가 정관 스님은 한경닷컴에 "최근 K-푸드의 위상이 올라간 것을 해외가 아니라 오히려 국내에서 느낀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관 스님은 "한식 중에서도 사찰 음식은 "2013년 백양사 천진암에 자리 잡기 전인 2010년부터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5~6년 전부터 많은 외국인이 사찰 음식을 맛보기 위한 '미식 여행'으로 국내 절을 찾는다"며 "지금 이곳도 매주 템플 스테이와 함께 사찰 음식을 접해보기 위해 30명의 방문객이 들른다. 이 중 20명이 외국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본 등 가까운 나라를 제외하면 과거엔 'K-푸드'에 대한 관심이 서구권에 머물렀다면, 요즘은 대만,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에서 특히 관심이 많은 것 같다"며 "특히 대만에서 사찰 음식에 대한 열기가 뜨겁다.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사를 통해 단체로 백양사를 찾는다"고 전했다.
'K-푸드'가 주목받는 이유에 대해선 "아무도 믿을 수 없어서"란 답변이 돌아왔다. 정관 스님은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세상이 뒤집히지 않았나. 이젠 자기 건강과 에너지는 나 스스로가 지켜야 하고, 모두를 의심하는 세상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식은 저장 음식과 발효 문화가 핵심이다. 여기에 사용되는 각종 콩 등이 모두 식물 단백질이고, 발효 과정에서 영양분이 나온다"며 "질병으로 인해 커진 건강에 대한 관심이 한식과 맞물리면서 더 많은 세계인에게 K-푸드가 주목받게 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은 'K-파인 다이닝'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눈길을 끄는 아름다운 외형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조미료 없이 내는 뛰어난 맛 때문이다. 그는 평소 "자연이 내주는 제철의 온갖 식자재가 곧 육신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러면서 앞으로 우리나라 전통 장류를 홍보하는 데 집중할 뜻을 내비쳤다. 정관 스님은 "3년 전부터 간장 등 우리 장 담그는 방법을 알리고 있다. 목표는 문화유산 등재다. 지금 90% 가까이 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