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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런던의 가장 화려한 곳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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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도시에든 가난이 드리운 곳이 있다. 화려한 도심의 조명이 닿지 않는 초라한 그늘에서, 사람들은 전구불과 가로등을 밝힌다. 그 희미한 불빛들이 모여 동네를 포근하게 비춘다. 미국의 슬럼, 브라질의 파벨라, 튀르키예의 게제콘두, 한국의 달동네….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고단한 삶을 따뜻하게 데우는 ‘빛의 풍경’은 모두 똑같다. 정영주(54)가 그린 한국 달동네의 야경이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인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유다.

한국의 스타 중견 작가 정영주의 그림이 유럽에 본격적으로 진출한다. 글로벌 명문 화랑인 알민 레쉬의 영국 런던 지점에서 오는 14일부터 열리는 개인전 ‘웨이 백 홈’(집으로 가는 길)이 그 첫걸음이다.

정영주가 달동네 연작을 시작한 건 2008년 무렵부터다. 1997년 프랑스 에콜 데 보자르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한 정영주는 작가로서 자리를 잡기도 전에 급히 귀국해야 했다. 1998년 터진 외환위기(IMF) 때문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불안과 고립을 부르면서 10년에 걸친 방황이 시작됐다. 그러다 달동네의 풍경을 만났다. 어린 시절 부산에서 숱하게 봐온, 초라하지만 가족의 온기를 간직한 그 불빛에서 정영주는 아름다움을 봤다. 캔버스 위에 한지를 오려 붙여 판잣집을 만든 후 물감으로 색과 빛을 그려넣는 작업을 시작했다.



2020년대 들어 정영주는 한국 미술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이름 중 하나다. 2020년엔 방탄소년단(BTS)의 리더 RM이 작품을 구입했고, 지난 3월에는 미술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작품이 작가의 경매 신고가(1억7000만원)를 쓰며 화제를 모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그의 작품에 열광하는 덕분에 이런 상승세가 가능했다. 영국의 저명한 예술작가 에이미 도슨은 “정영주의 그림 속 집에서 나오는 빛은 초라한 집 안에도 존엄한 개인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 따뜻함과 인류애 등을 상기시킨다”며 “세계 어느 도시에나 가난한 사람이 모여 사는 동네가 있는데 정영주의 작품은 그 동네에 대한 보편적인 기억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정영주의 그림은 끊임없이 진화 중이다. 최근 몇 년 새 정영주는 ‘집 안에서 나오는 빛’보다 ‘집 밖에서 동네를 비추는 빛’의 비중을 늘려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초록색, 분홍색, 주황색 등 자연과 계절을 연상시키는 색(色)의 비중을 늘린 신작들을 선보인다. 전시는 다음달 20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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