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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미 작가의 BOOK STORY] 유대인과 독일 귀족…두 소년의 슬픈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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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600만 명 이상 학살한 사건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으로 꼽힌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을 비롯해 홀로코스트를 다룬 소설이 지금까지 많이 발표되었다. 1930년대 초 독일 서남부 지방이 배경인 <동급생>은 유대인 혐오가 시작된 시점을 그린 후 30년이 지난 시점을 짧게 전하며 엄청난 감동을 안겨주는 소설이다.

<동급생>의 작가 프레드 울만은 1901년 독일 중산층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나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히틀러가 집권한 후 1933년 독일을 떠나야 했다. 프랑스로 망명한 그는 그림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1935년 파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이후 영국으로 가서 런던에 정착해 생활하다가 1985년에 세상을 떠났다.

<동급생>은 “단어 하나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묘사하려는 상황에 딱딱 들어맞도록 정교하게 서술”한 것으로 유명한데 관찰력이 예민한 화가의 눈이 “간결하고 정확한 묘사”를 가능하게 했다는 평이 뒤따른다. 전 세계 20개 이상 언어로 번역된 <동급생>은 현대 고전으로 꼽히며, 매년 유럽에서 10만 권 이상 판매되고 있다.
우아함을 풍기는 귀족 소년
소설은 “그는 1932년 2월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로 시작한다.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에 다니는 16세 소년 한스 슈바르츠는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않았지만 ‘그라프 폰 호엔펠스, 콘라딘’이 전학해 오자 마음이 달라진다. 백작임을 나타내는 ‘폰’이라는 글자에 걸맞게 ‘우아함’을 풍기는 그 아이의 모든 것이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유대인 의사의 아들이자 랍비의 손자인 한스는 콘라딘의 눈에 들기 위해 이전과 달리 수업 시간에 적극적으로 발표하기도 하고, 체육 시간에 용감하게 나섰다가 굴러떨어지기도 한다. 콘라딘을 의식해 수집한 희귀 동전을 학교에 가져와 살펴보기도 한다. 그런 노력 끝에 한스는 콘라딘의 유일한 친구가 된다. 둘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같은 수준 높은 논의부터 책과 시, 연극과 오페라, 여자애들 이야기까지 다양한 대화를 하며 점점 돈독해진다. 둘은 늘 길거리 벤치에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어느 날 한스가 콘라딘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콘라딘에게 “참으로 영광입니다, 백작님”이라며 깍듯이 인사하자 한스는 기분이 상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훈장을 받은 아버지는 자신이 독일인이라는 데 한 점 의심도 없는 인물이다. 그날 이후 콘라딘은 한스의 집을 자주 방문하지만 콘라딘은 한스를 멋진 저택에 초대하지 않는다. 드디어 웅장한 저택에 초대된 한스 앞에서 하인들은 콘라딘을 ‘백작님’이라고 부르며 깍듯하게 대한다. 그 후 네 차례나 저택에 갔지만 한 번도 콘라딘의 부모를 만나지 못한 한스는 그제야 콘라딘이 부모가 없을 때만 자신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오페라를 보러 갔을 때 부모와 함께 온 콘라딘은 끝내 한스를 소개하지 않는다.
30년 만에 들려온 콘라딘 소식
결국 폭발한 한스가 항의하자 콘라딘은 어머니가 유대인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만들어진 대로 받아들여 줘”라며 계속 친구가 되자고 한다. 하지만 둘은 차츰 만나는 횟수가 줄어든다. 새로 부임한 역사 선생 폼페츠키가 게르만 혈통의 우수성에 대해 전한 뒤 아이들은 노골적으로 한스를 멀리한다. “유대인이 독일을 망치고 있다. 깨어나라, 시민들이여!”라는 인쇄물을 한스의 의자에 붙이기까지 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부모님은 한스를 미국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콘라딘은 편지로 어머니와 함께 히틀러를 만났다는 사실을 전하며 “총통이 유대적 요소 중에서 좋은 것과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완벽하게 가려낼 능력과 의지를 지녔다고 믿어”라며 옹호한다.

하버드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한 한스는 25세에 변호사가 되어 유복하게 살면서 독일인을 멀리하고 독일어로 된 책도 읽지 않는다. 독일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어느 날, 카를 알렉산더 김나지움으로부터 추모비 건립에 기부해달라는 호소문과 조그만 인명부를 받은 한스는 명단을 훑어보다 콘라딘의 소식을 알게 된다.

<동급생>은 두 소년의 흥미로운 우정, 귀족과 평민이라는 격차, 독일인과 유대인의 숙명적 만남을 밀도 있게 전한다. 맨 마지막 단 한 줄의 반전에 엄청난 충격과 감동을 담아 독서의 기쁨을 가득 안기는 의미 있으면서도 재미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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