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13만명 도시에 10만명이 몰려 축제장 일대가 마비되는 일이 생겼습니다. '김밥 축제'로 이목을 끈 경북 김천시의 이야기입니다.
마치 '백종원 매직'을 연상시키게 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지방자치단체 노력으로 일어난 것일까요.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는 지난해 충남 예산시장 살리기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며 예산시장을 지역 명소로 만들었습니다. 지난 9월 '예산 맥주 페스티벌'에도 예산군 인구보다 4배 많은 35만명을 몰면서 연달아 '히트'를 쳤습니다. 한경 혈세 누수 탐지기(혈누탐) 팀이 전국 지자체가 벤치마킹해야 할 '김천 김밥축제'를 더 깊이 들여다봤습니다.
축제에 필요한 3박자가 '딱'
김천 김밥축제의 '대박' 요인은 다른 축제에서는 흔히 찾아볼 수 없는 ▲수요 파악 ▲내실 있는 콘텐츠 기획과 만반의 홍보 ▲무리 없는 예산·운영 편성이라는 3박자가 적절히 맞아떨어진 결과로 정리됩니다.익히 알려졌다시피 김천과 하등 상관없는 '김밥'을 축제 주제로 선정한 이유는 MZ(밀레니얼+Z)세대에게 김천을 알리기 위해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김천 하면 '김밥천국'이 떠오른다는 반응이 가장 많이 나오면서입니다. 시작부터 공무원들이 아이디어를 던지기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먼저 물어본 겁니다.
홍보 영상도 '고퀄리티'였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에 올라온 홍보 영상에는 대표 마스코트인 '꼬달이'와 한 여성이 등장해 춤을 추며 "우리는 이제부터 김밥이다"라는 가사의 노래가 나옵니다. 노래도 캐릭터도 경쾌하고, 지자체가 만든 영상인데 촌스러움이나 딱딱함도 없는 데다 길이도 1분이 안 돼 지루할 틈도 없습니다. 온라인에서도 "캐릭터들이 귀엽다", "영상 너무 잘 만들었다" 등 긍정적인 반응이 쏟아졌습니다.
유튜브 영상은 조회수 5만회를 넘겼습니다. 축제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김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영상 댓글에는 "이번에 김천 축제 가는데, 가는 김에 들를만한 관광지도 소개해달라" 등 요청도 쇄도했습니다. 이 영상은 각종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일파만파 확산했습니다.
김밥 천국을 다녀온 후기들을 보면 김밥을 '뻥튀기' 위에 제공해 '뻥튀기 그릇'을 만든 것도 '바이럴' 효과가 컸습니다. 재밌을 뿐 아니라 친환경 요소까지 더하면서 김천시의 섬세함까지 이목을 끈 겁니다. 골판지를 활용한 테이블과 의자, 포토존도 화제였습니다.
김밥과 맞는 컨셉이 '소풍'이기 때문에 최적지로 '사명대사공원 및 친환경생태공원 일대'를 적절한 장소로 골라 진행했는데 장소 제한에 10개 업체만 추리고 김밥을 1만개만 준비한 것도, 장소가 협소해 인파를 감당을 못한 것도 오히려 홍보가 더 되고 무리한 예산 집행이 되지 않으면서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축제에 들인 예산은 1억5000만원 정도랍니다. 이는 올해 지자체 축제 1개당 평균 예산인 14억의 10% 수준입니다.
이렇게 모든 대박 요소의 박자가 맞을 수 있었던 배경은 따로 있습니다. 아래 일선 공무원들이 가져온 결과물을 그대로 실행할 수 있게 밀어준 윗선이 있었던 것입니다. 김천시 관계자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면서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주셨다"고 전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무원 조직에 인색한 누리꾼들도 찬사를 보냈습니다. 시 게시판은 물론이고 SNS, 뉴스 댓글에도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 "남는 것보다 오히려 낫다", "이 정도 난리는 환영" 등 긍정적인 반응이 쇄도했습니다.
김천 정도면 '유니콘'…
현실 속 진짜 지자체 축제·행사는
김밥 축제 같은 지자체 사례는 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금 수십억 원을 쏟고도 파리만 날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혈누탐팀이 행정안전부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을 통해 산출한 결과, 2024년 전국 17개 지자체 행사·축제 경비 예산은 약 1조4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는 5년간 약 20% 증가한 수준입니다. 개수도 884개에서 1170건으로 32% 늘었습니다.현실 속 진짜 지자체 축제·행사는
가장 큰 문제는 참가율은 계속 떨어지고 경제 효과는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라살림연구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대비 2023년 전국 지자체 지역주민의 지역축제 참가율은 9.6%포인트 하락했습니다. 마이너스 성장하지 않은 곳은 충남과 전남뿐이고 나머지 지자체는 모두 지역 축제 인기가 떨어졌습니다. 외부 방문객 비율도 같은 기간 1.6% 감소했고, 1인당 관광소비액은 13%나 떨어졌습니다. 예산도 축제 수도 몇십퍼센트나 늘렸는데 경제 효과는 마이너스 성장이라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송진호 나라살림연구소 객원연구원은 "다수의 축제 수명이 긴 만큼 폐지되는 지역축제는 미비하다"며 "보조금만을 위해 운영되는 좀비 축제를 양산할 우려가 있는 만큼, 타당성 있는 기준을 수립하여 지역 특성화를 점진적으로 제고하도록 축제의 목적과 기능을 고도화할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현행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한 기관의 승인통계로는 각 지자체의 지역축제 현황을 파악하기 한계가 있다"며 "통계 없는 정책이 없듯 지역축제의 효과적인 관리와 내실화를 위해 선 관련된 근거 기준을 마련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천 김밥축제 대박' 이끈 총괄의 조언은
혈누탐팀은 이번 김천 김밥축제를 이끈 총괄 공무원 팀장에게 다른 지자체들에게 줄 조언이 없냐고 물었습니다. 해당 김천시 관계자는 "아니다. 저희는 미흡한 점이 너무 많았다"라면서도 조심스레 의견을 밝혔습니다.
그는 "축제를 하면 전체 예산 중 한 20%는 가수를 부르는 데 돈을 쓰곤 한다. 사람들이 가수가 오면 축제 참가율이 높아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트로트 가수라든지 유명 가수를 부르는 데 많은 예산을 쓴다"며 "그런데 저희는 이번에 유명한 가수로는 '자두'만 불렀다. '김밥'이라는 노래 때문이다. 불필요한 비용은 좀 줄이고 콘텐츠 쪽으로 힘을 줬던 게 시민들께서 긍정적으로 봐주신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내년 김밥축제 계획을 벌써 구상 중이라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경연대회를 통해 엄선된 김밥들을 선별하고, 대기업과 협업해 축제 때 선보이는 방안도 거론 중"이라면서 "전국에 좀 유명한 김밥집을 김천으로 모으는 것도 목표 중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가 생각했을 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데, 너무 좋게들 봐주시니까 부담감도 있고 내년에는 더 잘 될 수 있게 잘 고민해보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팀장님 말씀에 모든 게 담겨있습니다. 다른 지자체들은 이 모든 영광을 김천시에게 뺏기시겠습니까.
신현보 한경닷컴 기자 greaterfo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