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치 향상한다고서는 유상증자? 말이 다르잖아요."
"모순의 극치인가요."
30일 오전 11시 21분. 고려아연이 뜻밖의 공시를 했다. 2조5000억원 규모의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점심을 앞두고 나온 공시에 여의도 증권가는 물론 금융감독원도 술렁였다. 금감원·증권가 관계자들은 "황당하다"고 입을 모았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은 그동안 '주주가치'를 앞세워 MBK파트너스·영풍 연합과 격돌한 바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이번 유상증자로 앞으로 '명분 싸움'에서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이날 긴급 이사회를 열고 일반공모 방식으로 373만2650주를 발행하는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했다. 주당 67만원을 발행해 2조5000억원가량을 조달할 계획이다. 공모주식의 20%가량은 우리사주조합에 우선 배정하고 나머지는 일반 청약할 계획이다. 우리사주조합을 제외한 청약자는 특별관계자와 합산해 공모주식수의 3%(11만1979주)를 초과해 청약할 수 없도록 묶어뒀다.
고려아연이 소각하는 자사주 물량을 감안하면 우리사주조합은 지분 4%를 배정받게 된다. 반면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겪는 MBK파트너스·영풍 연합은 0.6%까지만 확보할 수 있다. 유상증자를 놓고 최윤범 회장 측의 우호주주 지분을 늘리려는 포석이란 설명이 나온 배경이다.
고려아연에 법률 자문을 제공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유상증자 작업과 관련한 법적 제반 사항을 꼼꼼히 따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합법적 테두리에서 유상증자를 추진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금감원과 시장은 이번 유상증자 결정이 그동안의 고려아연 행보와는 어긋난다고 보고 있다.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일반주주의 가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고려아연은 주주가치 향상을 위해 자사주 공개매수를 추진한 바 있다. 하지만 공개매수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주주가치를 희석하는 일반공모 유상증자를 발표한 것이다.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로 조달한 자금 가운데 2조3000억원을 차입금 상환에 쓴다는 데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해당 차입금은 자사주 공개매수 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메리츠증권과 한국투자증권, KB증권, 하나증권 등으로부터 빌린 2조3000억원이다. 경영권 방어를 위해 사용한 자금을 상환하기 위해 주주들의 지분가치를 희석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일반주주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도 상당하다.
중립적으로 관망하던 기관투자가들도 이 같은 고려아연의 결정에 반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 운용사 매니저는 "회사가 오너일가를 위해서 어떤 것이든 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고 말했다.
금감원도 31일 긴급간담회를 열고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대해 언급할 계획이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과 유상증자를 둘러싼 배경 설명이 어긋난다"며 "증권신고서부터 꼼꼼히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